기아가 올해 역대급 규모로 창출한 11조원 넘는 현금의 절반만 사용하며 현금 비축량을 크게 늘렸다. 예년보다 설비투자와 부채 상환 규모를 늘렸음에도 수조원의 잔여 현금이 생겼다. 풍부한 현금 보유량을 바탕으로 향후 지분투자를 비롯한 인수합병(M&A)과 주주환원 등을 확대 추진할지 주목된다.
◇미래차 경쟁력 강화에 3조 투입 올해 3분기 연결기준 기아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1조84억원이다. 역대 최대 규모로 전년동기 대비 27%(2조3594억원) 많은 현금이 유입됐다. 기아의 영업활동은 완성차 제조·판매와 렌트, 정비업 등 세 가지다. 단 전체 매출에서 완성차 제조·판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향상된 건 무엇보다 순이익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순이익에서 실제 현금 유출입을 동반하지 않는 비용은 더하고 수익은 빼는 등의 과정을 거쳐 산출한다. 순이익이 증가할수록 영업활동현금흐름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올해 기아의 3분기 순이익은 7조157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12%(3조7853억원) 증가했다. 국내와 북중미, 유럽 등 3개 시장에서 과거보다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고도 판매량이 대폭 늘어난 결과다. 특히 북미와 유럽 시장의 판매량 증가가 눈에 띄었다.
영업활동에서 역대급 현금이 창출되면서 기아는 안정적으로 예정된 투자 활동을 전개했다. 설비투자에 해당하는 유형자산 순취득에 1조2679억원, 지분투자에 해당하는 공동·관계기업 순취득에 1조2625억원의 현금을 지출했다. 소프트웨어와 지적재산권 등 무형자산 순취득에도 5532억원을 썼다. 모두 전년동기 대비 증가한 규모다.
사실 기아가 미래차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무형자산과 지분 취득에 사용한 현금 약 3조원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금융자산을 매각해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아는 올해 회사채와 국채 등을 순매각해 2조1031억원의 현금을 마련했고 머니마켓펀드(MMF)를 비롯한 단기금융상품을 순매각해서도 3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신규 차입 없이 '부채 감축' 집중...풍부한 현금 바탕으로 주주환원책 추진 필수 투자금을 기존 금융자산을 팔아 마련했다면, 기아가 올해 가장 많은 현금 지출한 곳은 어디일까. 부채 감축이다. 한국산업은행과 KB국민은행 등 국내 은행으로부터 빌린 차입금을 갚는 데 2조757억원, 기발행한 회사채를 상환하는 데 1조2403억원을 썼다.
차환 목적의 신규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수조원의 여유 현금이 생겼음에도 신규 차입과 회사채 발행으로 약 1조원의 현금을 조달한 점과 대비된다. 올해 기아는 철저하게 부채를 줄이는 데 집중한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 3분기 말 부채비율은 80.05%로 전년동기 대비 12.54%포인트(p) 떨어졌다.
올해 9개월간 미래차 투자와 부채 감축 등에 수조원의 현금을 썼음에도 기아는 5조2659억원의 현금을 남겼다.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 11조84억원 중 52%는 사용하지 않았다. 올해 초 11조5539억원이었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3분기 말 16조8198억원으로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풍부한 현금 보유량을 바탕으로 기아가 대형 M&A와 주주환원 확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미 기아는 주당 배당금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소각을 하는 등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을 하는 모습이다. 올해 배당금 지급에 전년동기 대비 17%(2000억원) 증가한 1조4032억원을 썼다. 자기주식 취득에도 5000억원을 지출했다. 취득한 자기주식 중 2245억원어치는 소각했다.
기아는 사업보고서에서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매년 최대 5000억원의 자사주 매입 후 최소 50%를 소각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적 호조와 풍부한 현금 보유량, 달라진 주주환원책 등으로 기아의 올해 주가 상승률은 42%가 넘는다. 지난해 말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10위에서 현재 8위로 두 단계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