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 조직을 보면 회사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자금 관리 위주의 '곳간지기'에 역할에 그치는 곳이 있는 반면 조달·전략·기획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된 곳도 있다. 특히 진행 중인 변화는 회사의 '현재' 고민이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는 힌트다. 주요 기업 CFO 조직의 위상과 역할, 전략을 조명한다.
신세계그룹이 경영전략실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하는 경영총괄 자리를 전임 신세계 CFO인 허병훈 부사장에게 내줬다. 동시에 산하 조직에 경영진단팀을 두는 등 경영 리스크를 예방하는 데 CFO 조직을 특화하고 힘을 싣고 있다.
이는 그동안 그룹과 계열사 사업 전반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했던 전략실이 적극적인 투자에만 집중하고 이에 따른 리스크는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내부적으로 중복투자 등으로 수익성에 비해 비용지출이 과대하게 나오는 등 비효율 케이스가 많았다는 평이다.
이에 신세계 경영전략실은 허 부사장 산하 경영진단팀장으로 박종훈 전 이마트 부문기획본부 부문관리1담당(상무보)을 내정했다. 앞서 박 상무보는 올해 9월 그룹 정기 인사에서 지마켓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하는 경영관리부문장 자리에 올랐는데 3개월만에 다시 이동해 그룹 경영 전반을 진단하는 팀을 총괄하게 된 것이다.
1972년생인 박 상무보는 2000년 이마트에 입사해 2014년 신사업담당 사업개발팀 팀장, 2021년 부문기획담당 겸 부문관리담당 등을 거쳤다. 관리담당을 역임하면서 그룹 캐시카우인 이마트와 관련 계열사들 재무와 투자 상태 등을 직접 관리했다는 게 인정받았다. 앞으로 경영전략실 경영진단팀을 이끌면서 중복투자 등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진 사업 관련 리스크를 살펴보게 된다.
중복투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이다. 현재 이마트와 그룹 계열사인 신세계I&C는 양쪽에서 모두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투자해왔다. 하지만 양사 간의 관련 사업 협력은 미미하다. 서로 호환되지 않는 다른 시스템으로 개발하면서 같은 그룹이면서 시너지를 낼 수가 없는 구조다.
신세계I&C는 전기차 충전 브랜드 스파로스EV를 운영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이마트는 2018년 외부 사업자 유치를 통해 일부 점포에 전기차 충전소 '일렉트로 하이퍼 차져 스테이션'을 도입했다.
이에 현재 이마트 전 점포에서 운영 중인 1000여개 충전기 중 신세계I&C 스파로스EV는 90여개뿐이다. 신세계I&C가 전기차 충전 사업에 뒤늦게 진출한 것도 협력이 더딘 배경 중 하나였다. 결국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에서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은 접고 신세계I&C로 관련 사업을 일원화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이마트 몰타입 전환 리모델링 투자를 기존 검토하던 11개에서 4개로 축소하기로 내부 결정하는 등 기존 경영진의 투자 상당부분을 갈아엎고 있다. 특히 그룹 전략실 차원에서 허 부사장 산하 경영진단팀을 중심으로 이제라도 기존 사업 등 전반을 살펴보고 수술대에 올리는 모습이다.
기존엔 전략실 경영지원총괄이 경영진단팀을 두고 있었지만 예방 차원의 경영·사업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앞으로 경영지원총괄은 감사팀만 전담하기로 했다. 경영진단팀이 사업·경영 관련 위기를 진단하는 대신 감사팀은 부정·부실과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담당한다.
이는 최근 감사 등을 거쳐 이마트 DT본부와 지원본부 인사부서 등 다수 인원이 야근 수당을 무단 수령한 게 확인되는 등 관리 부실 케이스가 다수 발생하면서 감사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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