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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갇힌 이마트

고진영 기자  2023-02-02 08:27:18
세상이 낯설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꼭 대단한 문제 때문은 아니고 사소하게는 굴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 믿긴다. 너무 이상한 맛이다. 더 거창(?)한 이유들도 있지만 어쨌든 보통은 타인과 좁힐 수 없는 다름을 실감할 때 그렇다.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의 트루먼이 된 것 같은 이질감을 느낀다.

이마트 경영진들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이마트의 처지를 두고 요즘 갑갑하단 말을 자주 듣는다. 과거 유통업계를 지배했던 이마트는 이제 어색한 현실에 처했다.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일이 드물어진 지금, 쿠팡의 득세에 부딪혀 좀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마트에 정통한 취재원을 만났더니 DNA가 다르다는 이유를 들었다. 온라인 전환을 추구한다곤 하지만 접근하는 시선 자체가 예전 감성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쿠팡 같은 경우 어플이 조금만 느려져도 김범석 의장부터 시작해서 아주 난리가 난다”며 “하지만 정용진 부회장이 과연 이마트몰 어플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항상 의문이 있고 이건 본질적인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차이”라고 했다. 태생적으로 굴 맛을 잘 모르는 회사라는 의미다.

로켓배송으로 시작된 ‘슈퍼루키’ 쿠팡의 습격은 시장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조단위 적자를 불사하고 물류센터를 짓기 위해 자금을 퍼줬다. 작년 3분기엔 드디어 영업흑자를 내면서 규모의 경제를 구축, 경쟁자들과 격차를 벌렸다.

반면 10년 전만 해도 8000억원에 육박하던 이마트의 연간 영업이익은 1000억~2000억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수익성이 급락했어도 직원 수는 잘나가던 시절과 크게 변화가 없다. 정규직 직원이 2013년 2만5000명 선이었는데 지난해도 2만4000명 정도로 비슷했다. 고비용 구조가 계속되고 있으니 CFO로선 골치아픈 일이다.

3조원을 넘게 주고 사들인 이베이코리아 인수효과 역시 기대에 못미친다. 쿠팡과 네이버쇼핑의 2강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G마켓이 역성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마트가 이커머스 판도를 바꾸려면 로켓배송에 못지 않은 혁신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아마존의 공습에 픽업 서비스로 대응한 월마트처럼. 단순히 덩치 불리기가 아니라 탈피에 대한 두려움을 버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영화 속에서 트루먼쇼 연출자는 섬에 있는 세트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트루먼에게 물에 대한 공포를 심어줬다. 하지만 가짜 공포가 만들어지기 전 어린 트루먼은 꿈을 말한 적이 있다. “I'd like to be an explorer, like the great Magellan.(저는 탐험가가 되고 싶어요. 위대한 마젤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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