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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민영화 이후 KT는 만성적인 외풍에 시달려왔다. 여기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수장으론 황창규 전 회장이 꼽힌다. 과거 부임하자마자 비서실을 대폭 키워 컨트롤타워 구축을 시도했다. 현재 연임 이슈로 시끄러운 구현모 사장이 황 전 회장 아래서 첫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구현모 사장뿐 아니라 KT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옛 비서실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비서실이 사라졌지만 주요 인사들이 여전히 요직에 앉아있는 셈이다. 특히 재무라인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재 KT는 김영진 전무가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재무실장으로 있다. 시차는 있으나 구현모 사장과 마찬가지로 KT 비서실에서 약 4년을 근무했다. KT의 전임 CFO인 윤경근 현 KT아이에스 대표이사(사장)도 수년 전 비서실을 거쳐갔다.
타임라인을 보면 2014년 구현모 사장이 비서실장에 발탁됐을 때 윤경근 사장이 비서실 2담당(상무)으로 있었다. 그러다 2017년 초 윤 사장이 윤리센터장으로 이동하면서 김 전무가 임원으로 승진, 비서실 2담당을 맡았고 같은 해 말에는 윤 사장이 재무실장에 올랐다. 김영진 전무는 그 후임이다.
그룹에서 비금융 상장계열사로는 가장 자산 규모가 큰 KT스카이라이프 역시 양춘식 전무가 CFO 역할을 한다. 2020년 KT스카이라이프 경영기획본부장으로 부름받은 양 전무는 2019년까지 KT 비서실 2담당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비서실은 애초 그리 크지 않았던 조직이다. 상무급 비서실장을 실무진 몇이 보좌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4년 KT 황창규 전 회장이 대표이사로 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 전 회장은 부임과 함께 ‘거대 비서실’부터 만들었다. 옛 삼성 미래전략실을 본 따려던 것으로 짐작되는 움직임이다.
당시 시니어급 신진 세력을 중추로 해서 비서실이 꾸려졌는데 조직은 3개 담당으로 나눴다. 1담당이 그룹 전략, 2담당이 재무와 IR을 포함한 관리업무, 3담당이 대외업력 협무를 담당하는 구조였다.
임원의 경우 앞서 KT 내에서 전략 및 기획과 자회사자산관리 등을 맡았던 구현모 사장(당시 전무)이 비서실장으로 전략 담당을 겸하고, 이대산 전 KT에스테이트 사장과 차재연 전 KT에스테이트 부사장이 각각 그룹 담당과 재무 담당을 맡았다. 기존 비서실의 역할이 의전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신이었다.
비서실 내 '2담당'을 중심으로 한 재무라인 강화도 눈에 띄는 변화로 평가됐다. 초기 재무 담당으로 발령난 차재연 전 사장은 KT가 민영화를 추진했을 때 필요했던 대규모 차입, KT-KTF 합병 과정에서 1조원에 달하는 회사채 발행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동시에 KT는 삼성전자 재무파트에서 일했던 김인회 전 사장도 재무실장(전무)으로 영입한다. 같은 해인 2014년 말 김인회 전 사장이 비서실 2담당으로 이동했으며, 여기엔 전무였던 구 사장을 부사장으로 올려 비서실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개편도 뒤를 따랐다. 2015년엔 구 사장이 경영기획총괄로 옮기고 김인회 전 사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해 비서실장을 맡는 등 이동이 잦게 이뤄졌다.
김인회 전 사장의 승격으로 공석이 된 비서실 2담당은 윤경근 사장이 넘겨받는다. 이후 2017년 윤 사장이 KT 재무실장에 오르자 김영진 전무가 비서실 2담당으로 다시 바통터치, 2020년 말부턴 김영진 전무가 KT 재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 전 회장의 과거 측근들, 비서실에서 재무를 살피던 인력들이 연달아 CFO로 된 그림이다.
다만 구 사장의 취임 이후론 비서실이 ‘CEO 지원담당’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1·2·3 담당도 CEO 지원담당 산하에 있는 1·2·3팀으로 이전됐다. 팀이 담당의 아랫급인 만큼 사실상 조직이 축소됐다고 볼 수 있다. KT 관계자는 “팀제로 그 전과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