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위주로 주주 환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자사주 소각에는 인색한 편이다. 취득에 편중된 자사주 정책에는 반쪽짜리 주주 친화 정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한다. 정부에서 자사주 취득 개정을 검토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자사주를 들고만 있던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변화도 감지된다. SK(주)를 필두로 포스코홀딩스가 자사주를 소각하기 시작했다. KT&G는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와 대화의 장을 열어두고 있고, 삼성물산은 자사주 소각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SK(주)와 KT&G는 정기적인 자사주 매입을 주주 환원 정책으로 쓰고 있는 대표 주자다. SK(주)는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발행 주식 중 10.41%(보통주 771만8583주, 장부금액 기준 약 2조54억원 규모)에 이르는 주식을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다. KT&G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체 발행 주식 중 15.3%(보통주 2101만2574주, 장부금액 기준 약 1조2369억원 규모) 규모의 주식을 자사주로 들고 있다.
자사주 취득 목적은 한결같다. SK(주)는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KT&G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밝혔다.
자사주 매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 주주가치 제고 효과는 크게 세 가지다. 유통 주식 수 감소에 따른 주당 가치 상승과 △경영진이 주식시장에 공표하는 주가 저평가 신호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할 만한 자금력 있다는 방증 등에 따른 주가 상승이다.
하지만 소각이 뒤따르지 않는 자사주 매입은 소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하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시장에 처분할 경우 유통 주식 수가 다시 증가해 자사주 매입 당시 나타났던 주당 이익 증가 효과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현행 자사주 제도가 소각을 강제하지 않다 보니 매입 위주로 자사주 정책을 펼치는 상장사가 상당수다. 자사주 취득·처분·소각은 상법과 자본시장법 틀 안에서만 이뤄지면 된다.
상법은 자사주 취득금액 한도와 자사주 처분·소각이 이사회 결의를 거쳐 실시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은 이익배당 한도 내에서 이사회 결의로 자사주를 직·간접 방식으로 취득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또 직접 취득은 이사회 결의를 공시한 다음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마치고, 처분 후 3개월 또는 취득 후 6개월 안에는 추가로 자사주를 취득·처분하는 걸 제한하고 있다.
자사주 취득 물량이 쌓여 있는 SK(주)와 KT&G는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자사주 소각 요구를 받고 있다. SK(주)는 라이프자산운용, KT&G는 안다자산운용이 주주 서한을 보냈다.
SK(주)는 지난해부터 자사주 정책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그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성형 사장은 자사주 소각을 주주 환원 옵션으로 고려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옵션이 아닌 자사주 중 10%(180만주, 약 4500억원 규모) 소각을 요구하고 있다. 자사주 잠재 매도물량(오버행) 이슈 해소로 주가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SK(주)는 이후 소각과 연계한 자사주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8월 2000억원 규모 자기주식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해당 매입분은 오는 3월 전량 소각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KT&G는 CFO 역할을 수행하는 방경만 총괄부문장(수석 부사장)이 전면에 나섰다. 안다자산운용은 지난해 10월 KT&G 주가가 2007년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며 자사주 소각 등을 담은 주주 서한을 보냈다. 주주 환원 목적을 완전하게 달성하기 위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라는 요구다. 방 부사장은 11월 안다자산운용에 해당 제안을 이사회에서 검토하고 주주들과 소통하겠다는 답신을 전달했다.
KT&G는 SK(주)와 달리 자사주 소각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지난해 11월 약 35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 결의 때 소각 언급은 없었다. 2021년 11월 발표한 중장기 주주 환원 정책에 따른 자사주 매입이었다. KT&G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약 1조원 내외의 자사주 매입을 실시할 예정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매입 일변도의 자사주 정책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8월 이사회에서 6722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발행주식 기준 3%(261만5605주, 장부가 기준 5675억원)가량 자사주를 소각했다. 2004년 자사주 소각(178만주) 이후 18년만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보유 중인 자사주는 지분 10.3%(872만2053주, 장부가액 1조8923억원) 규모다.
삼성물산은 최근 주주 친화 정책에 자사주 소각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2020년 발표한 3개년 주주 환원 정책에는 주식매수청구권행사로 취득한 자사주(보통주 280만2962주, 우선주 15주)를 주총 결의로 소각하고, 잔여 자사주는 인수·합병(M&A)에 활용하거나 소각 등으로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3분기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는 지분 13.2%(보통주 2471만8099주, 취득가액 2조460억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