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급격한 금리 인상과 메말랐던 유동성 등 2022년은 기업 재무를 총괄하는 CFO들에게 쉽지 않은 해였다. 이 와중에도 기업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타기업을 인수하는 등 위기 속 기회를 찾았다. CFO들이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재계 내 각 CFO들의 2022년 성과를 되돌아보고, 2023년 직면한 큰 과제들은 무엇인지 THE CFO가 살펴본다.
올해 ㈜신세계는 신사업 추진과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먹거리 장만에 분주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전임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담당한 허병훈 부사장을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으로 이동시키고 기존 신사업 발굴에 집중해온 홍승오 전무를 신임 CFO로 앉혔다.
전현직 CFO 모두 인수합병(M&A) 관련 이슈를 다루게 함으로써 앞으로 ㈜신세계를 먹여살릴 재무적인 전략을 심도깊게 짜도록 하는 모습이다. 특히 서울옥션 인수 여부 등 미술 경매시장 진출건을 연내 마무리할 수 있을지가 올해 ㈜신세계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기존 CFO였던 허 부사장은 지난해 말 차정호 사장 대신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을 맡게 됐다. 1962년생인 허 부사장은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그룹에 들어갔다. 구조조정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06년 삼성물산 상사부문 경영관리담당, 2008년 경영지원실 재무담당 등을 거쳤다.
이후 그는 권혁구 신세계그룹 전략실 사장의 추천으로 2018년 신세계그룹 전략실 지원총괄로 이직했다. 과거 허 부사장과 삼성에서 함께 일했던 현직 신세계 임원들도 함께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관리 및 운영, 재무 등 숫자 관련 이슈에 실력있다는 평가였다.
이번에 허 부사장이 이동한 기획전략본부는 신세계의 인수합병 및 백화점부문 사업전략과 신사업을 추진하는 조직이다. 앞서 2021년 신세계는 휴젤 인수를 검토했으나 결국 인수계획을 최종 철회하면서 고사했다. 대신 2022년 신사업을 발굴할 조직으로 기획전략본부를 확대했다.
허 부사장은 CFO 시절인 2021년 신세계의 현금창출력을 기반으로 서울옥션 인수건을 지원했다. 2021년 별도 기준 신세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453억원이었다. 같은 해 12월 서울옥션 지분 4.82%(85만6767주)를 확보하기 위해 280억원을 투입했다.
정관 변경을 통해 2021년 사업 목적에 '미술품 전시·판매·중개업'을 추가하고 2022년 '인터넷 경매 및 상품중개업'을 덧붙이는 등 관련 사업에 의지를 보인 신세계는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지난해 6월 조회 공시를 통해 "서울옥션 인수를 검토한 바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힌 것이다.
일각에선 글로벌 유동성 위축에 미술품 거래 시장도 규모가 축소된 데다 인수 금액 관련 이견도 좁혀지지 않은 탓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신세계의 서울옥션 경영권 인수건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진 않았지만 시장 상황이 달라지고 협상 기간도 길어지면서 연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에 CFO였던 허 부사장이 기획전략본부장으로 기존에 추진해온 서울옥션 인수 여부를 저울질하며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 다른 신사업 발굴과 M&A 전략도 직접 새로 수립해나가야 한다.
허 부사장의 결정을 재무적인 관점에서 지원할 신임 CFO 홍승오 전무도 서울옥션 인수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홍 전무가 올해 CFO로 선임되기 직전까지 현재 허 부사장이 이동한 신세계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에서 재무기획담당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신세계그룹에 몸담기 시작한 홍 전무가 중점있게 다룬 이슈는 서울옥션 인수건으로 직접 실무를 맡았다. 누구보다 관련 이슈를 잘 아는 만큼 홍 전무가 허 부사장의 올해 신사업 결정을 재무적인 관점에서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전현직 CFO가 사실상 서로의 롤을 바꾼 셈"이라며 "향후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재무조달 전략 등까지 함께 고민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