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자를 빼놓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대기업 다수의 CFO가 전략 수립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CFO가 기업가치를 수치로 측정하는 업무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다. THE CFO가 CFO의 또 다른 성과지표로 떠오른 투자 포트폴리오 현황과 변화를 기업별로 살펴본다.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은 기업 간 가장 강력한 결속체로 평가받는다. 지분 맞교환도 그런 면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지 더 큰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공동 프로젝트보다는 공동 기업 운영이 한층 더 이해관계가 복잡한 영역이다.
따라서 기업이 합작법인에 보내는 인물은 자사의 이익을 지키면서도 공통의 이익도 도모할 줄 아는 양질의 인력일 수밖에 없다. 이질적인 문화에 적응할 줄 아는 유연한 태도와 이질적인 문화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췄는지도 살펴야 한다. LG화학이 합작법인들에 보낸 전현직 임직원들도 이러한 점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롯데와 20년 공동체 '씨텍' 이끄는 최성열 대표
2005년 롯데케미칼과 1대1로 설립한 씨텍. 현재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에 있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 공장에 18년째 전기와 산소, 공업용수, 물류 서비스 등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LG화학에 매년 100억원의 배당금도 안긴다. 최근 세운 합작법인이 아직 배당금을 줄 만큼 순이익을 내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효자' 법인이다.
이곳은 공동대표 체제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전현직 임원 한 명씩을 대표이사에 추천한다. 현 LG화학 측 대표는 최성열 전 상무다. 1966년생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LG화학에서 경영기획담당과 중국지역총괄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관련해서 중국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중국에선 현지 기업 또는 지자체와 협력해 사업을 진행해야 하므로 최 대표에게 다른 기업과 손발을 맞추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일례로 최 대표는 지난해 중국지역총괄로 근무한 때 중국 장쑤성 우시시(市)에 테크센터 건립을 위한 30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 협약을 이끈 경험이 있다. 장쑤성은 LG화학 거래처가 있는 곳이다.
올해 1월 선임된 최 대표의 임무 중 하나는 LG화학의 대산공장 증설 작업에 발맞춰 씨텍의 지원 역량도 끌어올리는 것이다. LG화학은 2023년까지 총 1조원을 투자해 대산공장의 PBAT와 POE 생산 능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PBAT는 썩는 플라스틱으로 주목받는 친환경 소재다. POE는 태양광 필름과 자동차 범퍼 등에 쓰인다.
씨텍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공장 증설이 예정돼 있으면 우리도 인력 확충 등 규모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한다"고 밝혔다.
◇몸집 키우는 티엘케미칼, 살림 책임지는 정진철 CFO
티엘케미칼은 지난해 태광산업과 설립한 법인이다. 단 씨텍과 다른 점은 1대1이 아닌 태광산업이 지분 60%, LG화학이 지분 40%를 갖는 구조로 세워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표이사는 태광산업 측 인물인 조진환 현 태광산업 대표이사다. 조 대표는 태광산업과 티엘케미칼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태광산업이 티엘케미칼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는 셈이다. 티엘케미칼은 합성수지 원료인 아크릴로니트릴(AN)을 생산한다. 합성수지는 전기 및 전자제품 부품, 건축자재와 선박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그만큼 아크릴로니트릴의 수요는 높다.
대표 자리는 태광산업의 몫이지만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는 LG화학의 몫이다. 정진철 전 LG화학 경영지원팀장이 설립 당시부터 합류해 회사의 자금 흐름과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정 CFO는 티엘케미칼 사내이사 3명 가운데 유일한 LG화학 측 인물이다. 필요한 때 양사 이익의 균형을 잡는 역할이 정 CFO에게 있다.
티엘케미칼 자산은 총 1189억원으로 결코 작은 규모의 합작법인이 아니다. 몸집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2025년 아크릴로니트릴 연산 규모를 26만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국내 1위인 동서석유화학의 연산 규모가 56만톤인 점을 고려하면 작지 않다. 인력도 100여명 충원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성장기 기업의 CFO는 재무뿐 아니라 인사, 법무 등의 업무도 두루 맡는다. 정 CFO는 다양한 업무 수행 요구를 받을 것으로 풀이된다.
합작법인 본사가 있고 설립 과정에서 지원 역할을 한 울산시의 한 관계자는 "올해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당초 세운 로드맵이 다소 지연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작지 않은 규모의 투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파트너사 오너 3세 돕는 역할까지...한국전구체 홍순범 이사
다른 이야기이지만 울산은 LG화학과 최근 2년 사이 가장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자체다. 시 관계자는 "인허가 등과 관련해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돕고 있다"며 "미포산업단지라는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점도 울산의 장점"이라고 전했다.
LG화학은 지난해 티엘케미칼에 이어 올해도 울산에 또다른 합작법인 한국전구체를 세웠다. 최근 지분을 맞교환한 고려아연의 관계사인 켐코가 합작 파트너다. 지분은 켐코가 51%, LG화학이 49%를 갖는 구조로 세웠다. 이에 따라 대표이사는 켐코의 최제임스성(한국 이름 최내현) 대표가 맡고 있다.
최내현 대표는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국적은 미국이다. 1970년생으로 현 고려아연의 최윤범 대표보다 5살 연상이다. 최윤범 대표는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고려아연은 최윤범 대표가, 켐코와 한국전구체 등은 최내현 대표가 이끄는 형태로 고려아연의 3세 경영 구도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한국전구체 사내이사 4명 중 유일한 LG화학 측 인사인 홍순범 사내이사도 고려아연 3세를 돕는 역할을 맡는다. 1965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홍 이사는 LG화학에서 금융담당과 관리혁신TFT장, 정도경영담당 등을 역임한 뒤 현재 석유화확 경영관리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CFO로 성장하는 코스에 있는 셈이다. 한국전구체에서도 경영관리 업무를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구체는 LG화학의 미래 사업으로 자리잡은 양극재 관련 사업을 영위한다. 양극재 핵심 원재료가 전구체다. 현재 울산 내 여러 공장 설비를 연이어 매입하면서 생산 설비 구축에 한창이다. 전구체 양산 시점은 2024년 2분기다. 홍 이사 파트너사 오너 3세와 함께 양사가 총 400억원을 투자한 합작법인의 안정적인 출발을 책임져야 한다.
LG화학 관계자는 "홍 이사는 지금까지 금융과 재무 등 경영관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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