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자를 빼놓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대기업 다수의 CFO가 전략 수립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CFO가 기업가치를 수치로 측정하는 업무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다. THE CFO가 CFO의 또 다른 성과지표로 떠오른 투자 포트폴리오 현황과 변화를 기업별로 살펴본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사업 부문을 떼어낸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포함한 첨단소재와 바이오, 리사이클링(재활용) 등 3대 사업 중심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한 주된 방법은 '인오가닉'으로 설명되는 지분투자와 인수합병(M&A) 등이다.
올해 9월까지 다른 기업에 새롭게 출자한 규모만 8000억원에 육박한다. 5년 전 200억원도 되지 않았던 연간 신규 출자 규모와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지체없이 회사의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 배터리 소재·친환경 사업 등에 총 7975억원 신규출자...5년 전보다 54배 증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은 올해 다른 기업에 총 7975억원을 새롭게 출자했다. 2017년부터 최근 5년간의 연간 신규 출자 규모를 살펴봤을 때 올해가 최대 규모다. 지난해보다 2배 가량 크고, 2017년보다는 54배 이상 크다.
면면을 보면 모두 전기차 배터리 제조 사업 부문을 떼낸 LG화학이 미래 사업으로 낙점한 분야와 관련 있다. 가장 많은 5224억원을 출자한 일본 도레이와 합작법인은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필름을 제조·판매하는 사업을 한다. 도레이와 지분 50%씩을 나눠 갖고 있다. 올해 설립했지만 벌써부터 순이익을 내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이 출자한 중국의 천제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인 리튬을 생산·판매한다. LG화학은 1969억원을 투입해 지분 9%를 취득했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로 리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관련 기업에 부담이 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투자는 안정적인 리튬 확보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세 번째로 많이 출자한 곳은 캐나다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업체이자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리사이클이다. 258억원을 출자해 지분 2%를 확보했다.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확보를 넘어 재활용을 통한 선순환 생태계 구축에 관심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불어 고려아연 계열사인 켐코와 합작해 만든 한국전구체에는 204억원을 출자해 지분 49%를 얻었다. 이를 통해 LG화학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갈 핵심 원자재인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전구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출자 규모는 14억원으로 크지 않지만 확보한 지분은 5%로 작지 않은 영국의 레벤타스도 주목할 만한다. LG화학이 지난해 투자한 국내 스타트업 '이너보틀'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하는 곳이다. 친환경 플라스틱 제조에 관심이 큰 LG화학이 플라스틱 부문에서도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아베오 인수에 7000억원 이상 투입 예정..."3대 신성장 동력 투자 진행"
종합하면 올해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확보, 전기차 배터리 선순환 생태계 구축, 그리고 플라스틱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위해 최근 5년래 최대 규모의 신규 출자를 단행했다. 관련 사업이 이제 태동기에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관련 신규 및 후속 출자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단 LG화학이 미래 사업으로 낙점한 세 개 분야 가운데 바이오에 대한 투자는 올해 신규 출자 내역에 없는데, 이는 내년 1분기 내 인수 예정인 미국 바이오 기업 '아베오'에 대한 출자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항암치료제 개발 업체인 아베오 지분 100% 인수에 LG화학은 5억6600만달러를 투입한다. 7일 현재 환율인 1313원으로 환산하면 7000억원이 넘는다. 올해 9개월간 신규 출자한 금액을 내년엔 단 한 분기에 신규 출자에 투입하는 셈이다.
바이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한 기업 인수에 쏟아붓는 이유는 여러 사업 가운데 생명과학 부문 경쟁력이 가장 열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열위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전기차 시장 만큼 성장성이 높은 곳으로 평가받는다.
올해 3분기 누계 연결기준으로 LG화학은 △석유화학 △첨단소재 △생명과학 △LG에너지솔루션 등 크게 4개의 사업 영역을 갖고 있다. 이 중 바이오를 포함한 생명과학 사업의 매출 규모는 6192억원이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미미하다.
시장 한 관계자는 "아베오 인수로 LG화학 사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 부각됐던 생명과학 영역이 성장의 축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수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별도기준으로 올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54%로 양호한 편이고 들고 있는 현금및현금성자산만 1조원이 넘기 때문에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 측은 지난달 열린 3분기 실적 발표를 겸한 기업설명회(IR)에서 "대외 매크로 환경은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신중한 투자 집행과 운전자본 관리를 통해 캐시 플로우 또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지속 성장을 위해 3대 신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와 육성 또한 흔들림없이 진행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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