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신소재와 바이오 신사업 진출, 대규모 설비투자, 그리고 롯데건설 지원 등으로 어느 때보다 롯데그룹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금리 인상과 잇딴 채권시장 이슈에 더해 대규모 지출이 예상된 롯데그룹에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꾸면서 앞으로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내부에서 현금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지금, 롯데그룹의 유동성 상태를 THE CFO가 점검해본다.
지금은 롯데케미칼에 자리를 내줬지만 오랫동안 롯데그룹 간판 계열사는 롯데쇼핑이었다. 1970년부터 백화점과 슈퍼, 영화 등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롯데'라는 이름을 알렸을 뿐 아니라 실적 면에서도 그룹을 이끌었다.
단적으로 10년 전 매출을 비교해보면, 2012년 연간 연결기준 매출은 롯데쇼핑이 25조원, 롯데케미칼이 16조원이었다. 2022년 9월 현재는 롯데쇼핑이 11조원, 롯데케미칼이 16조원이다. 4분기 실적이 반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롯데쇼핑 매출은 절반 가량 줄어든 반면 롯데케미칼은 1년간 벌던 돈을 9개월 만에 버는 곳으로 변화했다.
최근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에서도 둘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롯데케미칼은 주주로서 유상증자에 참여해 875억원을 출자한 데 이어 5000억원을 추가로 빌려줬다. 반면 롯데쇼핑은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자회사인 우리홈쇼핑을 통해 우회적으로 1000억원을 대여해줬다. 롯데쇼핑은 우리홈쇼핑 지분 53.4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일견 롯데케미칼처럼 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롯데건설을 직접 지원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분 관계가 없는 롯데물산이 빚 보증과 다름없는 자금보충약정을 4200억원 규모로 제공한 점을 고려하면, 그룹에서 지원 계열사를 선정할 때 롯데쇼핑의 직접 지원은 선택지에 올리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유는 역시 롯데쇼핑 재무상태에서 찾을 수 있다. 직접 지원할 수 있으려면 자회사를 제외한 롯데쇼핑만의 재무 체력이 튼튼해야 하는데, 별도기준으로 롯데쇼핑이 1년 내 갚아야 하는 차입금과 사채만 2조6169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2조원 넘는 현금을 자유롭게 가용하기 힘든 점이 이번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에서 제외된 이유로 분석된다.
실제 유동비율이 48%로 낮은 편이다. 2년 연속 하락해 50% 밑으로 내려앉았다. 이는 차입금과 사채, 매입채무, 미지급금 등을 포함해 1년 내 갚아야 하는 부채가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유동비율은 200% 이상일 때 기업의 상환능력이 양호하다고 평가하는데, 유동비율만 봐도 롯데쇼핑은 다른 계열사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롯데쇼핑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채가 많기 때문에 부담하는 이자비용도 적지 않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이자비용을 포함해 부담한 금융비용만 759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가량 늘었다. 매출원가, 판매관리비와 함께 롯데쇼핑 실적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1조원에 가까운 금융비용이다. 부채를 상환해 채무 부담을 낮추는 게 회사의 우선순위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내년 만기물에 대해 금융권 및 투자자들과 상환과 차환 관련 협의를 하고 있다"며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더불어 롯데쇼핑이 순손실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지 않은 점이 이번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롯데쇼핑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연속해서 순손실을 냈는데, 2020년엔 순손실 규모가 1조원이었다.
지난해 순이익으로 전환했지만 1918억원으로, 가장 최근에 순이익을 낸 연도인 2017년(3696억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다행히 올해 2년 연속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난해보단 적을 것이라는 게 시장 예측이다. 즉 부채 줄이는 것과 함께 전사적으로 턴어라운드(실적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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