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경우 정확한 상속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재산이 한국과 일본에 나뉘어져 있던 데다 워낙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상속 재산 중 부동산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 더해 대략 1조원 정도로 추정만 되고 있다.
이 경우 전체 상속세 중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1000억원대다. 다른 그룹 오너와 비교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신 회장 역시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분납하고 있다. 몇 년 사이 배당과 보수를 통해 꾸준한 현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과거 경영권 분쟁과 지배구조 재편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규모 현금 수요가 발생했던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 상속규모는 2200억원대, 부동산 등 숨겨진 재산 많을 듯
신 명예회장이 유서를 따로 남기지 않아 재산은 남매가 나눠 상속받았다.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신동빈 회장 그리고 신유미 전 호텔롯데 고문 등 모두 4명이다.
신 명예회장이 남긴 재산 가운데 국내 주식만 상속 규모나 방안 등이 명확히 나와있다. 신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롯데지주(보통주 3.10%·우선주 14.2%), 롯데제과(4.48%), 롯데칠성음료(보통주 1.30%·우선주 14.15%), 롯데쇼핑(0.93%), 롯데물산(6.87%) 지분을 남매 간 사전 협의에 따라 나눠 가졌다.
41.7%는 신동빈 회장이, 33.3%는 신영자 전 이사장이 상속받았다. 신동주 회장은 법정 상속비율대로 25%를 받았고, 신유미 전 고문은 상속을 전혀 받지 않았다. 신 전 고문은 주식보다는 부동산, 그리고 일본 쪽 유산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주식 상속은 롯데그룹 지배구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신 명예회장 생전에 상당수의 주식이 증여됐기 때문이다. 사업보고서 확인이 가능한 2000년대 초중반 신 회장은 이미 그룹 계열사 10곳 이상의 지분을 확보했다. 그룹의 핵심이던 롯데쇼핑 지분율만 봐도 20%를 넘겨 최대주주였다.
상속 이후 신 회장의 지분율은 롯데지주는 11.75%에서 13.00%로, 롯데쇼핑은 9.84%에서 10.23%로 각각 높아졌다. 이전까지 지분이 전혀 없던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에서도 각각 1.87%, 0.54%로 적게나마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상속세는 사망일 전후 2개월 동안 종가를 평균한 금액으로 계산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상속된 상장사 주식 가치는 2200억원 수준이다. 신 회장이 받은 상속분은 917억원, 여기에 최고세율 60%를 적용한 상속세는 550억원대 수준이다.
비상장사인 롯데물산 주식 가치는 3남매 몫을 모두 더해 2300억원 수준으로 정리됐는데 이 가운데 신 회장이 받은 주식 가치는 577억원이다. 역시 상속세 최고세율인 60%를 적용하면 35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상장과 비상장 계열사 전체 주식 상속세를 모두 더해도 900억~1000억원 사이로 크게 무리로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이 더해지면 달라진다. 신 명예회장은 국내에만 경기 오산시 부산동, 인천 계양구 목상동, 서울 서초구 신원동 등의 지역에 대규모 토지를 보유했다. 다만 부동산의 가치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신 명예회장 별세 당시 추정된 상속 재산은 국내외 계열사 주식, 부동산 등을 더해 모두 1조원이었다. 상속세는 4500억원 수준으로 4남매가 비슷하게 나눠받았다고 가정할 경우 신 회장 몫은 1125억원이다.
◇1000억대 상속세 추정...그럼에도 연부연납 선택한 배경은
롯데그룹 규모와 비교했을 때 그리 많은 수준은 아니지만 신 회장은 연부연납 제도를 선택해 6차례에 걸쳐 나눠내고 있다. 연간 내야하는 주식 상속세 규모는 180억원 안팎에 그친다. 특히 신 회장에게 연간 수백억원의 현금이 유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굳이 연부연납을 선택할 필요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신 회장은 매년 연봉과 배당을 더해 수백억원의 현금을 손에 뒤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03억원의 보수를 받아 국내 대기업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이 받았다. 지난해에는 8개 회사에서 연봉으로 183억원을 받았다. 사실상 주요 계열사에서 모두 받고 있다. 배당 수익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6개 회사에서 배당으로만 300억원 넘게 받았다. 2020년 배당금 200억원대였는데 1년 만에 1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보수와 배당만으로 500억원 가까이 받았는데 여기에 일부 비상장사와 일본 계열사까지 더하면 금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연부연납을 활용한 건 그만큼 현금 보유를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신 회장은 2013년부터 수년 동안 신동주 회장과 당시 롯데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을 놓고 엎치락뒤치락 지분 경쟁을 벌였다.
지분 경쟁이 일단락된 뒤 지배구조를 가다듬는 과정에서도 대규모 현금이 필요했다. 순환출자고리를 끊고 지주사인 롯데지주 지분을 확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롯데지주 출범 이후에도 꾸준히 지분율을 높이고 있다. 2017년 출범 직후 9.07%였던 지분율은 상속 직전 11.7%까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대출도 늘어났다. 신 회장은 현재 롯데지주 주식 972만6000주를 담보로2241억원을 대출받았다. 평균 이자율은 3.08%로 단순 계산해도 매년 67억원을 이자로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 크지 않은 규모라고 해도 상속세를 단번에 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지분 활용 카드는
신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도 여럿이라 활용할 수 있는 카드도 많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 외에도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계열사 지분을 많게는 10% 이상 들고 있다. 지분 보유 계열사만 14곳에 이른다.
신 회장은 지난해 롯데케미칼 지분 9만705주 전량을 롯데지주에 주당 27만7500원에 매각했다. 252억원 규모다. 기존 지분율은 0.26%로 사실상 지배구조상 의미가 없었다. 신 회장은 지분을 롯데지주에 넘기면서 현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롯데지주의 롯데케미칼 지분율은 기존 25.33%에서 25.59%로 소폭이나마 높아졌다.
신 회장이 갖고 있는 나머지 지분들 역시 매각 가능성이 열려있다. 롯데쇼핑과 롯데역사, 한국후지필름, 롯데상사 등을 제외하면 신 회장의 지분율이 매우 낮아 매각한다고 해도 지배구조에 큰 변화는 없다. 특히 대부분 회사의 최대주주가 롯데지주로 과반의 지분율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 신 회장→롯데지주→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확고한 지배구조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신 회장이 굳이 개인 지분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신 회장은 지난해 롯데제과, 롯칠성음료, 롯데쇼핑 지분을 세무서 담보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당시 지분 매각을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