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0대 기업집단 가운데 GS그룹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LG그룹에서 계열이 분리되면서 2005년 출범한 이래 올해로 17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인수·합병(M&A)부터 사업 유지 여부까지, 선택의 기로가 숱하게 존재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인물 가운데 그룹이 적절한 경로로 나아가는 데 활약한 이들이 있었다. 임병용 전 GS건설 경영지원총괄은 지주사 재직 시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불참을 이끌어내 그룹 재무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했다. 조윤성 전 GS리테일 경영지원본부장은 비(非)핵심 사업을 정리해 본업인 편의점 부문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대우조선 인수 포기' 신의 한 수 임병용
GS그룹 역사를 되돌아보면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천만다행인 순간'으로 회자된다. 무리한 재무적 부담을 피하겠다는 원칙에 입각해 M&A 대열에서 이탈한 선택이 적절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임병용 전 GS건설 경영지원총괄(사장)을 위시한 실무진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과거 임 사장은 지주사 GS홀딩스(현 ㈜GS)에 몸담으면서 대우조선해양 인수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활약했다. GS그룹은 2006년부터 TF를 가동해 국내외 전략 컨설팅 기업과 협의할 정도로 M&A를 둘러싼 관심이 컸다. 2008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하자 신속하게 대응했다. 포스코그룹과 컨소시엄을 형성해 입찰을 준비했다.
하지만 인수 가격 제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경쟁에 가세한 한화그룹 컨소시엄이 6조원대 입찰가를 제시할 것이라는 정보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시가총액이 2조원에 못 미치는 회사를 M&A하는 데 6조원 넘는 실탄을 쏟아붓는 건 무리라는 인식이 대두됐다. 결국 GS그룹은 포스코그룹과 컨소시엄을 해지하고 인수전 불참을 선언했다.
임 사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M&A 참여 의사를 철회한 배경으로 인수 금액 제시를 둘러싼 시각차를 거론했다. 그는 "포스코는 매우 공격적인 가격을, 우리(GS)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다"며 "마지막까지 협의를 했으나 상당한 폭의 가격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무적 위험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판단했다는 의미가 녹아든 발언이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6조3000억원'을 쓴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조달 여건이 악화하면서 대금을 제때 지급키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M&A는 무산돼 법정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조선업 역시 선박 발주량 감소, 수주 단가 하락 등의 악재가 맞물려 2010년대 중반까지 불황을 겪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더라면 자칫 실적 부진에 따른 재무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졌을 지도 모른다. 임 사장의 분투가 GS그룹을 살린 셈이다.
이후 임 사장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였다. 지주사에서 GS건설로 자리를 옮긴 2013년 경영지원총괄을 맡았다. 2020년에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재무 담당 임원이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영전한 사례로 손꼽힌다.
◇'유통사업 재편 조타수' 조윤성
그룹 주요 계열사 가운데 GS리테일은 편의점 운영에 집중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부문도 존재했다. GS스퀘어 3곳과 GS마트 14곳을 뒀다. 2009년 상반기 말 기준으로 매출에서 두 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였다.
사업 재편의 조타수로 나선 인물은 조윤성 전 경영지원본부장이었다. 유통업계 전망을 살피면서 편의점 영역에 주력하는 게 타당하다는 인식을 굳혔다. 온라인몰 팽창, 1인 가구 증가세 등은 대규모 오프라인 점포 수익 감소와 편의점 소비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했다.
2009년 10월에 GS리테일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매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신세계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등 주요 유통 기업과 접촉했다. 5개월여 흐른 2010년 2월에 딜(Deal)이 성사됐다. 1조3400억원의 가격을 제시한 롯데쇼핑을 적격 인수자로 낙점했다.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며 얻은 실탄은 편의점 사업을 확대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GS25 점포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대목이 눈길을 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3900여곳 매장을 보유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만5500여곳으로 집계됐다. 12년 동안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조 본부장은 CFO 재임 시절 활약상을 발판으로 중요 직책을 맡았다. 2014년에는 편의점영업부문장(부사장)에 올랐다. 2019년 말에는 사장으로 직급이 한 단계 올랐다.
올해 3월 퇴임할 때까지 플랫폼BU를 이끌었다. 편의점, 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매장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조 부문장은 상품 기획(MD) 조직 통합, 본부에서 소매 가격과 재고 관리를 주도하는 '체인 오퍼레이션' 시스템을 선보이며 비용 절감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GS그룹 유통 사업의 도약을 이끈 공로자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