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자동차업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구리와 알루미늄 등 원재료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완성차 가격경쟁력을 악화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역차별까지 현실화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IRA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가 미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도 거론한다. 하지만 이 경우 오히려 천정부지로 높아진 원재료 가격 부담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란 의견도 나온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상반기 기준 알루미늄과 구리의 1톤당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24%, 5%씩 올랐다. 코로나19 발생 첫 해인 2020년과 비교하면 원재료 가격 상승률은 60~80%에 육박한다.
쌍용차의 철판 가격도 지난해 1톤당 102만7724원에서 올 상반기 118만2755원으로 15% 올랐다. 한국지엠 원재료 취득원가도 2020년 1739억원에서 작년 말 3390억원으로 95%나 늘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원재료 품목별 자급도는 철 0.6%, 알루미늄광, 구리광, 니켈광 등은 0%다. 사실상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해외 원자재 가격이 국내기업의 투입비용과 직결된다.
특히 현재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지속되고 있어 원재료 수입 가격부담이 심화됐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들의 원화 기준 실제 수입가격도 함께 오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결제통화별 수입비중은 지난해 기준 달러 80.1%, 원 6.5%, 유로 6.5%, 엔 5.1%, 위안 1.5% 순이다. 미국 달러가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수입제품 가격이 같더라도 달러 환율이 오르면 실질적인 수입가격도 동일하게 상승한다.
자동차업계는 수출 비중이 높아 강달러 환경에서 상대적인 수혜를 입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재료 가격 폭등 효과가 환율 수혜를 상당부분 상쇄하게 된다. 그나마 현대차, 기아 등 자동차업계는 이 같은 원재료 가격 상승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원자재 매입분 중 일부는 원재료 스왑 등의 파생상품을 활용해 가격 변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변동위험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부터 적용되는 미국 IRA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전략적 차원에서 미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 시점을 내년 상반기에서 연내로 당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IRA에 따르면 북미산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고 현지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착공일정을 당겨 가동시점도 2025년에서 2024년 하반기로 앞당기게 되면 현대차그룹 전기차도 보조금을 받게 돼 이로 인한 가격차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원재료 가격 상승세가 2024년까지 지속될 경우 보조금과 별개로 원가부담은 가중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원재료 등 비용 파급효과는 해당 시점으로부터 약 5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원자재 가격 및 환율 변동이 최종재 생산비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 약 5개월이 걸린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시장 상황이 향후 2년간 지속한다 가정하면 실질 생산비용 반영은 2025년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보조금 차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원재료 가격 여파까지 계산해 공장 준공 시일을 저울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