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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 의결권 톺아보기

운용업계 주요 타깃 금융지주, 의안 반대 '아이러니'

⑤이사회 구성 안건 '거부' 경쟁, 자승자박 행태 지적도

양정우 기자  2022-05-23 08: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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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는 피투자 기업의 성장과 수익자의 이익 증진을 위해 수탁자가 책임져야하는 의무다. 다수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200여개 운용사들은 같은 안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며 의결권을 행사했다. 더벨은 이들의 주주 활동을 점검해보고 기업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스튜어드십코드를 행사하는 자산운용사의 모회사인 금융지주사에 주주총회 안건 반대가 집중된 건 아이러니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4대 금융지주가 지분을 보유한 운용사는 공모펀드를 가진 종합자산운용사인 터라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입김이 센 기관으로 꼽힌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2021년 4월초~2022년 3월말) 주주총회에서 KB금융지주(의안반대 합산 37개)와 하나금융지주(34개), 신한금융지주(29개), 우리금융지주(25개) 등 4대 금융지주의 의안에 운용사의 반대가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KB금융지주의 경우 사측이 아닌 주주제안 안건에 대한 반대까지 포함된 결과다.

무엇보다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진용을 구축하는 의안에서 운용사의 반대가 이어졌다. 4대 금융지주 모두 사외이사 선임(재선임) 안건에서 거부 의사가 줄을 이었다는 것도 공통된 특징이다. 선관의무를 엄격하게 소화하는 운용사는 이들 사외이사 후보가 임기 중 발생한 각종 부정적 이벤트(금융지주, 계열사 등)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 결격 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건 4대 금융지주마다 영향력을 보유한 자산운용사가 있는 점이다. KB자산운용과 신한자산운용, 하나UBS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 등이다. 이들 운용사는 종합자산운용사로서 국내 시장에 스튜어드십코드의 안착을 이끄는 주축 하우스이기도 하다. 투자한 상장사의 이사회 진용을 진단하는 시장의 파수꾼을 자처한다.

흥미로운 점은 선량한 관리자의 지분을 쥔 모회사가 오히려 다른 운용사의 주요 반대표 타깃이 된 것은 웃지못할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모회사와 운용 계열 내지 합작사는 개별 사안마다 사측과 고객의 입장에 맞춰 독립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법리적 이슈와 무관할지라도 상반된 행보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KB금융지주의 경우 대표적 반대 안건은 사외이사 후보 3인(선우석호, 최명희, 정구환)을 선임하는 의안이었다. 이들 3인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하려는 안건 역시 반대표가 집중됐다. 이들 후보자는 교보악사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흥국자산운용, 유리자산운용 등에서 재임기간 중 자회사(KB증권)가 라임펀드 관련 제재를 받아 감독 의무에 소홀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이렇게 모회사가 사외이사 선임의 건을 밀어부친 가운데 KB운용은 투자처의 이사회 구조에 의결권 행사의 화력을 집중했다. 우선 효성(사내이사 조현준·조현상)과 효성첨단소재(사내이사 조현상)의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했다. 사외이사 선임 의안에서는 천보의 후보자가 지난 임기 중 이사회 출석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 후보자를 향한 반대 사유와 같은 감시 의무 해태를 내세워 투자처의 주총 안건을 거부하기도 했다. KB운용은 나용천 오스템임플란트 사내이사 후보를 횡령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 재무회계책임자로서 기업가치 훼손에 대한 감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사외이사 후보 5인(박안순, 변양호, 성재호, 이윤재, 허용학) 선임의 건 등이 문제시됐다. 라임펀드와 부정 채용 이벤트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선임에 반대표가 쏟아졌다. NH아문디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베어링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등에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지주사의 계열사인 신한자산운용은 우리금융지주의 주총 의안(노성태, 박상용, 장동우 등 사외이사 선임의 건)에 줄줄이 반대했다. 공식적 반대 사유는 감사 의무 소홀이다. 이 안건에 반대한 운용사는 역시 이들 후보자의 재임기간 중 금융 당국 제재가 발생해 감독 의무를 소화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 과다 겸임을 거부 이유로 내놓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신한자산운용이 다른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는 가운데 신한금융지주는 동일한 결격 사유를 가진 사외이사를 선임하려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한 형국이다. 이런 엇갈린 행보는 안건 반대에 부딪힌 투자처 입장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정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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