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금융지주사와 달리 지방금융지주의 경우 한동안 조직의 효율성과 최고경영자의 전문성을 내세우며 CEO 장기집권 방지 규정을 두지 않았다. 지역은행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방금융지주만의 특성이 있다는 논리였다. 과거 DGB금융지주가 유일하게 대구은행장을 대상으로 연령 제한 요건을 뒀으며 추후 지주사 회장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현재는 3곳 지방금융지주 모두 각사 사정에 맞춰 해당 규정을 만들어 놨다. 다만 이들 역시 당대 CEO 때 회장 연령 제한 규정을 손보려고 했다. JB금융지주의 경우 CEO 연령 제한 요건의 '신설'과 '수정'이 모두 김기홍 회장 체제 안에서 이뤄졌다. BNK금융지주는 CEO의 연령 대신 임기를 제한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김지완 전 회장의 사정에 들어맞는 규범이었다.
◇CEO 연령 제한 도입 늦은 지방금융, '회장 전문성· 조직효율성' 논리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회장(CEO) 연령 제한을 도입한 건 2011년의 일이었다. KB금융지주는 2015년, 우리금융지주는 2019년에 해당 규정을 들였다.
반면 지방금융지주의 경우 대부분이 소극적이었다. DGB금융만이 하나지주와 신한지주를 따라 2011년 11월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해 대구은행장 선임 조건을 만 67세 미만으로 제한했다. 이는 은행장에 한했고 지주사 회장에 나이 제한을 둔 것은 2016년 10월부터다. JB금융은 2019년 11월, BNK금융은 2019년 3월 비슷한 규정을 수용했다.
당시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하나 둘씩 회장 연령 제한을 도입하면서 지방금융지주도 모범규준을 들여와야 하지 않냐는 얘기가 많았다. 지방금융지주들은 시중은행계 금융지주사와는 다른 처지를 내세우며 이를 미뤘다.
지방은행 중심으로 운영되는 지방금융지주의 경우 CEO를 둘러싼 제약이 클수록 효율적인 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맨파워'가 중시되는 지방 금융시장에서 나이라는 물리적 기준을 도입하면 능력 있는 CEO를 기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논리였다. 안 그래도 뛰어난 인재들이 수도권에 몰리는 상황인 만큼 CEO의 전문성 및 지방은행 조직의 효율성을 고려해 물리적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방금융그룹에도 'DGB금융 비자금 사태', 'BNK금융 주가조작 사태' 등 CEO 리스크에 기인한 사건이 빚어지자 그룹 안팎으로 자정 노력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됐다. 이에 지방금융에도 지배구조 개선 행보가 시작되면서 CEO 연령 제한 규정을 받아들이게 됐다.
◇김기홍 회장 수정, 9년 임기 가능…김지완 전 회장, '연임 제한' JB금융은 2019년 3월 김한 전 회장이 떠나고 김기홍 회장이 새롭게 자리에 올랐다. 2019년 당시 JB금융은 9년 간 오너 경영에서 전문경영 체제로 전환한 시기로 김 회장이 '내실 경영'을 필두로 조직을 정비해 나가기 시작한 때였다.
더불어 당시 JB금융의 지배구조 개선 행보는 금융당국의 종합검사와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금감원의 종합검사는 2015년 폐지됐다가 4년 만에 부활했는데 2019년 7월 지방금융지주사 중 JB금융이 처음으로 받았다. 금감원은 종합검사 직전, JB금융의 여러 경영 현황 및 내부통제와 더불어 CEO 경영승계 절차를 미흡한 사항으로 꼽았다.
JB금융은 2019년 12월 기존 지배구조 내부규범 속에 '사내이사의 재임 연령은 만 70세 미만으로 하되,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하는 경우에는 최종 임기를 해당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 주주총회일까지로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CEO 연령 제한을 장기집권 견제 장치로 둔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4년 뒤 같은 김기홍 회장 체제 안에서 수정됐다. JB금융은 지난해 말 같은 조항을 ‘사내이사의 선임 및 재선임 시 연령은 만 70세 미만이어야 한다’고 개정했다. 이전 조항대로면 1957년 1월생인 김기홍 회장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임기를 2년밖에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내규 수정으로 71세까지 회장직을 보장받게 됐다. 김기홍 회장은 지난달 말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했다.
BNK금융에도 역시 CEO 장기 집권을 막는 내부규범이 자리하고 있다. 이 또한 전임 회장 시절 반영된 것인데 당시 CEO 처지를 고려한 규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BNK금융은 2019년 3월 내부규범을 개정해 회장의 연임 횟수를 1회로 제한했다. 모든 금융지주들이 회장의 나이 제한을 둔 것과 달리, 연임 횟수를 제한한 것은 BNK가 처음이었다.
해당 규정이 신설된 때는 김지완 회장 재임 시절이었다. 김 전 회장이 BNK금융 회장에 올랐던 때는 2017년 9월로 이미 당시 71세였다. 국내 금융지주사 중 최고령 CEO로 불렸다. 만약 나이 제한을 걸었으면 출마도 못 했지만 연임 제한으로 규범을 만들면서 회장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BNK금융에서 CEO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는 연임 횟수 제한이 최선의 방책이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전임자였던 성세환 전 회장은 주가조작과 엘씨티 특혜대출, 채용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받았고 BNK금융은 큰 혼란에 빠진 바 있다. 회장의 집중된 권한을 막는 장치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사실상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회장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는 더 강력한 조치인 만큼 연령 제한보다 합당한 규범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당대 회장에게 최적의 방책이었다는 점이 옥의 티가 됐다.
한편 DGB금융의 경우 김태오 전 회장이 3연임을 앞두고 대표 선임 연령제한을 만 70세로 확대하려고 하다 이를 접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경고의 발언을 하고 일주일 뒤 김태오 전 회장은 3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이에 따라 DGB금융에 만 67세 이상 후보자를 회장으로 선출하거나 재선임할 수 없도록 제한한 내부 규범은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의 내규 안에서는 빈대인 BNK금융 회장은 연임의 기회가 남아있다. 2023년 3월에 회장에 오른 만큼 연임을 가정한다면 최대 2029년 3월(69세)까지 회장이 가능하다. 황병우 DGB금융 회장의 경우 1967년생 57세 젊은 나이로 규정상으로는 3연임도 가능하다. 9년 뒤 66세다. 김기홍 회장은 내년 정기 주주총회 승인을 거치면 3년의 임기가 추가돼 총 9년간 JB금융을 이끈다. 임기 종료시점에는 71세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