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 연령 제한 규범은 애초 회장의 장기집권 견제를 명분으로 만든 장치였다. 다만 그 당시에도 방법과 시기, 각 사별 사정과 맞물려 많은 논란이 있었다. 14년이 흐른 지금 몇몇 금융지주사들이 해당 규범을 거둬들이는 것을 놓고 이 역시 '고무줄 연령 제한'이란 비판이 적잖다. THE CFO는 금융지주사 CEO 나이 제한의 취지와 주요 그룹들의 해당 규범 활용법, 이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 등을 살펴봤다.
"경기 시작했는데 규칙을 바꾸니 논란이 생기는 것."
하나금융지주의 CEO 연령 제한 완화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은 좋지 않다. 이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시기'다. 하나금융 내 한 사람, 함영주 회장을 염두에 둔 개정으로 보일 소지가 충분한 만큼 '회장 선임 절차 직전'은 피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금융당국 내 퍼지고 있다.
지배구조 규범 개정은 이사회 소관임에도 금융당국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데는 금융사의 경우 일반 기업과 달리 예금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추가로 지니고 있어서다. 현재 각 금융사 지배구조 내부규범의 토대인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좀 더 엄격하게 설정된 이유다.
◇개별 금융사 자율 권한이지만…문제는 '타이밍'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최근 더벨과의 통화에서 "CEO 연령 제한 부분은 개별 민간금융지주사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해 정할 일"이라면서도 "다만 안타까웠던 부분은 굳이 승계절차 시행 바로 전날에 지배구조 내규를 바꿔서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야 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지난 2일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변경하며 함 회장 연임 시 임기 3년이 가능토록 했다. 이전 규정에는 만 68세인 함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2027년 3월까지 2년의 임기 밖에 채울 수 없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3년의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됐다.
하나금융이 회장추천위원회를 가동한 건 개정 바로 다음날이었다. 회추위는 이달 3일 회의를 열고 12명(내부 6명, 외부 6명)의 후보군(롱리스트·Long List)을 선정했다.
앞선 관계자는 "하나금융의 'CEO 연령 70세 제한' 완화 개정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며 "KB금융과 우리금융에서도 재임 기간 중 만 70세에 도달할 경우 사실상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만큼 하나금융의 개정이 딱히 잘못된 흐름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어 "이는 단지 시기의 문제"라면서 "연초나 혹은 회장 선임 절차 개시 이전에 개정 작업이 이뤄졌다면 추후 그 분(함 회장)이 선임되더라도 훨씬 더 하나금융을 바라보는 인식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내규 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는 한 사람 뿐이다. 하나금융은 지난 23일 회장 최종 후보군(Short List)을 선정했는데 내부 후보 중 3명 안에 함 회장이 포함됐다. 함 회장 외 다른 후보로는 이승열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겸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겸 하나증권 사장이 올랐다.
이 행장은 1963년생이고 강 사장은 1964년생으로 각각 만 61세, 62세다. 결과적으로 하나금융의 CEO 연령 제한 완화는 함 회장만 영향권 내 있게 되는 셈이다.
◇금융당국의 예민한 반응 '은행지주의 시스템적 중요성'
일각에서는 민간금융사의 내규 개정에 당국이 유독 민감하게 군다는 반론도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CEO 인선에 개입하려는 명분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과거 김정태 전 회장 등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등에 대해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은행지주가 일반 기업과 달리 예금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비롯해 경제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좀 더 엄격한 승계절차가 필요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각 금융사 지배구조 내부규범의 토대인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좀 더 타이트하게 설정된 이유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각 금융사의 지배구조 내부규범의 바탕이 된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금융사의 경우 일반 기업과 달리 예금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추가로 지니고 있다는 데서 출발했다"며 "하나금융의 해당 개정으로 그룹 내 단 한 명 밖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구를 위한 규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지난 20일 함 회장 임기 만료 전 그룹이 관련 내규를 변경한 것을 두고 "함 회장은 연임에 도전해도 (개정한 규정을) 적용 안 받겠다 할 분"이라고 말했다. 함 회장이 연임에 도전하게 되면 '개인을 위한 규범 개정'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스스로 논란을 피해가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금융그룹 내 굵직한 사태들 가운데 금융지주사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 체제가 빚어낸 결과물도 많았던 만큼 이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때문에 회장 선임 절차 만큼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게 업계 내 공통된 목소리다.
앞선 관계자는 "십수년 전 금융당국이 CEO 연령을 제한하라고 권고한 적도 없고 이런 세부적 규정은 자율에 맡긴 것으로 안다"며 "은행지주 회장의 권한이 센 것이 사실인 만큼 외부에서 비춰지길 CEO 선임할 때만이라도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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