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 연령 제한 규범은 애초 회장의 장기집권 견제를 명분으로 만든 장치였다. 다만 그 당시에도 방법과 시기, 각 사별 사정과 맞물려 많은 논란이 있었다. 14년이 흐른 지금 몇몇 금융지주사들이 해당 규범을 거둬들이는 것을 놓고 이 역시 '고무줄 연령 제한'이란 비판이 적잖다. THE CFO는 금융지주사 CEO 나이 제한의 취지와 주요 그룹들의 해당 규범 활용법, 이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 등을 살펴봤다.
최고경영자(CEO)의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하는 일명 '70세룰'은 국내 금융지주와 그 계열사에 퍼져있는 제도다. CEO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특이한 점은 지난 14년 동안 오너가 있는 금융회사가 아닌 지배주주가 없거나, 있어도 제한적인 은행계 금융지주에만 뿌리를 내렸다.
이는 소유가 분산된 은행계 지주의 지배구조 특성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만큼 이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회장 선출권을 행사한다. CEO와 사외이사 간 밀착관계가 형성될 경우 수 차례 연임을 통한 장기집권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및 금융당국의 우려를 샀다.
◇2011년 시작된 연령 제한, 은행계 지주들만 도입
금융권에서 CEO 연령 제한 규범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앞서 2010년 경남은행에서 4136억원 규모의 대형 금융사고가 터진데다 신한 사태 등이 불거지면서 이 같은 내부통제 이슈의 원인 중 하나로 CEO의 과도한 연임이 지목됐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집권으로 은행 조직이 고착화되는 데다 후계자 육성에 소홀해 안정적인 승계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011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리스크 완화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2010년 하반기부터 국내 은행권을 중심으로 금융사 지배구조 운영 측면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크게 부각됐다"며 "특히 임원의 적격성 판단, 최고경영진 승계절차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때 하나금융지주를 시작으로 금융지주사들은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통해 만 70세로 연령 제한을 내규화했다. 신한금융지주도 비슷한 시기에 회장 첫 선임 연령을 만 67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연임 시 만 70세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을 확립했다. 2015년에는 KB금융지주가 이를 받아들였고 DGB금융지주도 만 67세 이상은 회장 후보가 될 수 없게 제한했다.
유일하게 나이 제한이 없는 곳이 BNK금융지주인데 회장 연령을 제한하는 것보다 연임 회수를 1회로 제한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라 2022년 내규를 손질했다.
세부적인 항목은 조금씩 다르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은 선임 또는 재선임시 연령을 '만 70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일단 선임된 이후 70세가 넘어도 임기를 마칠 수 있다. 반면 신한금융은 만 67세 이상인 CEO가 연임할 때 재임기간이 만 70세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된다. 연임에 성공했더라도 만 70세가 되는 시점에 임기가 종료된다.
하나금융의 경우 원래는 연령 제한을 만 70세 이하로 뒀다. 재임 중 만 70세가 되면 최종 임기는 해당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주주 총회일까지로 했다. 김정태 전 회장이 2021년 4연임에 성공했음에도 1년 임기만 받은 게 이 때문이다. 최근 개정된 것도 이 부분이다. 함영주 회장부터는 재선임된 후 만 70세가 넘어도 잔여임기를 보장 받는다.
◇CEO-사외이사 밀착시 '장기집권' 가능한 구조
금융을 제외한 업종에서 이 같은 연령 제한을 내규화한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물다. 비은행 금융사 중 가장 덩치가 큰 삼성생명이나 한국금융지주, 메리츠금융지주 등 비은행계 금융지주사처럼 특정 지배주주가 있는 곳 역시 관련 규정이 없다. 다만 이들은 임원 인사를 통해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CEO의 연령대를 관리하고 있다. 홍원학 삼성생명 대표는 1960년생(만 64세),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대표는 1963년생(만 61세)이다.
은행계 금융지주에 유독 연령 제한 이슈가 있는 데는 지배주주가 없거나 영향력 행사가 제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소유분산 기업이라 이사회, 특히 사외이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회장의 선출권을 갖는다. 경영진에게 이사회가 포섭될 경우 수 차례 연임을 통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연령 제한 규정을 도입한 명분에는 글로벌 기업 벤치마킹 노력도 있다.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하나금융은 골드만삭스 등을 벤치마킹했다고 밝혔다. 2023년 기준 미국 S&P 500 기업 중 69%가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연령 제한을 두고 있으며 특히 CEO의 경우는 65세로 정한 사례가 많다.
다만 CEO 연령 제한은 법규가 아니라 내규 등으로 두고 있어 이사회에서 얼마든지 개정하고 적용 면제를 부여할 수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보면 미국 상장기업은 일반적으로 이사에 대해 임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일부 기업들이 정관에 은퇴 연령을 명시하고 있다 해도 이사회 의결로 적용을 배제할 수 있도록 정해놓고 있다.
나이 제한 기준을 만 70세로 둔 배경에는 도입 당시(2011년)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령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하나금융지주의 김승유 회장이 만 68세였고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은 만 66세였다.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이 만 67세, KB금융지주 어윤대 회장이 만 64세였기 때문에 규범을 제정할 때 이를 감안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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