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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대행자 역할을 맡은 등기이사들의 모임이자 기업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기구다. 이곳은 경영실적 향상과 기업 및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준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의무를 가졌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된 구성을 갖췄는지, 이사를 투명하게 뽑는지, 운영은 제대로 하는지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사회 활동을 제3자 등에게 평가 받고 공개하며 투명성을 제고하는 기업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이에 THE CFO는 대형 법무법인과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고견을 받아 독자적인 평가 툴을 만들고 국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행해 봤다.
바이오의약품 개발 기업인 에이프로젠은 2019년 국내 바이오 업계 최초로 시가총액이 10억달러가 넘는 비상장 벤처, 이른바 ‘유니콘’ 기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2022년 7월 코스피 상장사인 에이프로젠메디신에 흡수합병된 후 상장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상장 3년차, 경영 의사결정의 핵심인 이사회 운영은 미흡한 모습이다. 이사회의 규모나 구성 측면에서 아쉬운 지점이 발견됐다. 특히 오너인 김재섭 회장이 이사회를 이끌고 있어 견제기능에 의문부호가 따랐다.
◇전 부문 평점 2점 이하, 구성·견제기능·평가 개선 1점대 THE CFO는 평가 툴을 제작해 ‘2024 이사회 평가’를 실시했다. 5월 발표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와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반기보고서 등이 기준이다. 평가 부문은 △구성 △참여도 △견제기능 △정보접근성 △평가 개선 프로세스 △경영성과 등 6개 부문이다.
평가 결과 에이프로젠은 255점 만점에 93점을 받았다. 전체 평가 기업 500개 가운데 두 자릿수 점수를 받은 곳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하위권에 위치한다는 의미다. 6개 부문 모두에서 2점 이하의 평점을 받았으며 구성, 견제기능, 평가 개선 프로세스에서는 1점대 평점을 기록했다.
최하점을 받은 구성 부문은 9개 항목 중 7개가 최하점인 1점이다. 우선 이사회 규모가 매우 작다. 에이프로젠의 정관에서는 이사회 구성원 상한을 8명으로 두고 있지만 현재 이사회 인원은 4명이다.
지난해 반기 기준만 해도 이사회는 3명이었다. 특히 사외이사는 1명밖에 있지 않아 견제기능과 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든 구조였다. 지난해 10월 김 회장의 단독대표 체제가 확립되면서 사외이사를 1명 더 선임했다.
규모는 작지만 오너를 제외하면 구성은 적정 수준이다. 여성 사내이사가 있고 2명의 사외이사는 각각 파로스백신과 아시아나노텍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력이 있다. 바이오 기업의 사외이사로서 적절한 경력이라고 볼 수 있다.
◇미흡한 견제기능, 최후 보루 감사 역할도 1명뿐 에이프로젠 이사회 운영은 전반적으로 견제기능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견제기능 평가 부문의 평점도 1.6점에 불과하다. 오너가 포함된 이사회 구조도 아쉽지만 기업 경영 견제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는 감사 역할 역시 1명뿐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에이프로젠은 감사위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간 매출액이 10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상법상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는 없다. 하지만 일부 중소기업 가운데는 견제기능 강화를 위해 사전적으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곳도 있다.
현재 감사의 이력 역시 특이하다. 에이프로젠의 김학주 상근감사는 육군사관학교 35기 출신으로 군과 관련한 경력이 전부다. 대개 감사들이 공인회계사 등 회계 관련 역량을 보유한 데 비해 독특한 이력이다.
김 감사는 2018년 감사로 선임된 이후 줄곧 에이프로젠의 상근감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에이프로젠은 김 감사에게 별도의 교육은 제공하지 않지만 경영전반에 관한 감사직무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관련 자료와 정보를 제공한다. 분기별로 재무담당이사, 책임공인회계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며 전문성을 보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