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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70세룰' 진단

하나금융 CEO 연령제한 '시작과 끝'을 향한 시선

②2011년 김승유 '3연임 위한 포석'론 제기, 함영주 회장 거취와 '연결'

김현정 기자  2024-12-24 13:07:00

편집자주

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 연령 제한 규범은 애초 회장의 장기집권 견제를 명분으로 만든 장치였다. 다만 그 당시에도 방법과 시기, 각 사별 사정과 맞물려 많은 논란이 있었다. 14년이 흐른 지금 몇몇 금융지주사들이 해당 규범을 거둬들이는 것을 놓고 이 역시 '고무줄 연령 제한'이란 비판이 적잖다. THE CFO는 금융지주사 CEO 나이 제한의 취지와 주요 그룹들의 해당 규범 활용법, 이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 등을 살펴봤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회장(CEO) 연령 제한 규정을 손질하면서 화두에 올랐다. 재직 중이더라도 만 70세가 넘으면 임기가 제한되는 조항을 수정해 만 70세가 넘어도 잔여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게 했다. 지배구조 규범 개정은 이사회 소관이지만 함영주 회장의 연임 시점과 맞물리면서 이목이 쏠렸다.

금융권에서 해당 내부규범이 출발한 시작점 역시 하나금융이다. 2011년 최초로 CEO 임기를 만 70세로 제한했던 곳이다. 당시 글로벌 금융사의 선진 지배구조 규범을 따른다는 명목 아래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를 김승유 당시 회장의 3연임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다.

이번에도 함영주 회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하나금융에 회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면서 해당 내규를 바꿨다. 70세룰의 '시작과 끝'이 당대 회장의 재선임과 맞물리면서 '타이밍'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장수 CEO 논란 많던 시기, 김승유 당시 회장 3연임 부담 덜어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금융권에서 회장 임기에 연령 제한 요건을 결부시킨 곳은 하나금융이 최초였다. 2011년 2월 이사 임기를 만 70세로 제한하는 기업지배구조 규준을 제정·발표했다.

당시 하나금융연구소가 주요 선진국 은행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검토했고 이를 벤치마킹해 새 규범을 도입한다고 하나금융 측은 설명했다. CEO의 장기집권 폐해를 막고 후계자를 키우는 등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한 조치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상 이는 김승유 당시 회장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었다. 김 전 회장은 해외 선진 금융기관의 승계관리 및 지배구조 모범 규준 등을 참고로 하나금융에 맞는 규준을 만들어볼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규범 개정 당시 하나금융이 CEO 승계절차 중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하나금융이 모범규준을 만든 배경에 김 전 회장의 3연임을 위한 포석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임기 만료를 앞둔 김 전 회장의 당시 나이는 68세(1943년생)로 70세 연령 제한을 둘 경우 최대 2년간 회장직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2009~2010년은 KB금융과 신한금융 등에서 CEO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장수 및 고령 CEO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던 시기였다. 연령을 제한하는 내부규범을 마련하면 김 전 회장 입장에서는 장기 연임을 둘러싼 비난에 대한 부담을 덜고 좀 더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2월 하나은행장을 시작으로 당시 기준인 2011년 초까지 14년간(행장 3연임, 회장 2연임) 하나금융 CEO를 맡고 있었다.

당시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후속 작업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룹 내에선 외환은행 인수를 이끌어온 기존 CEO들이 해당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어쨌든 실제 규범을 바꾸고 13일 뒤 김 전 회장의 3연임이 확정됐다. 이후 하나금융을 따라 신한, DGB 등 여타 은행지주그룹들이 CEO 나이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70세룰 완화…만 68세 함영주 회장 연임과 맞물린 '타이밍'

하나금융은 내규 도입 후 14년이 지난 현재 CEO 연령 제한 규정을 손질했다. 지난 2일 지배구조 내부 규범을 변경하면서 회장 연임 시 임기가 3년을 온전히 보장받게 됐다. 기존 규범 제4절 10조에선 '이사의 재임 연령은 만 70세까지로 하되,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하는 경우 최종 임기는 해당 임기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 주주총회일까지로 한다'고 명시했었다.

CEO가 재임 중 만 70세가 되면 나머지 임기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정태 전 회장이 2021년 4번째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3년이 아닌 1년 임기만 받은 게 이 규정 때문이었다. 이번 개정을 통해 문구를 '해당일 이후'에서 '해당 임기 이후'로 바꾸면서 회장이 재선임된 후 만 70세가 넘어도 잔여임기 동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개정 전 규범에 따르면 만 68세인 함영주 회장은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2027년 3월까지 2년의 임기 밖에 채울 수 없었으나 이제는 3년의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됐다. 하나금융은 지난 23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고 최종 후보군(Short List)을 선정했는데 내부 후보 중 3명 안에 함 회장도 포함됐다.

이 같은 지배구조 개정 작업은 이사회 소관이다. 민간 은행의 경영 자율성 보장 측면에서 이사회가 내규를 손본 게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함영주 회장이 현재 임기 만료를 3개월가량 앞두고 있는 상황이란 게 이목이 쏠리는 배경이다. 하나금융은 본격적인 회장 선임 절차 직전에 규범 개정을 진행시켰다.

금융권에서는 함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그의 재임기간 업적 및 공로와 별개로 해당 내부규범 개정이 그룹 내 1인을 위한 작업 아니냐는 의심스런 시선도 공존하고 있다. 그간 금융지주 회장들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내규를 개정하는 일이 심심찮게 있던 만큼 이와 연결 짓는 시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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