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밸류업의 계절이다. 메리츠금융과 KB금융 등 금융회사를 비롯해 현대차와 DB하이텍 등 제조회사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주주환원 정책 발표에 여념이 없다.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공시 종목으로 지수를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본시장 곳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들이야 밸류업을 추진하든 말든 주주환원 정책에는 도통 관심 없어 보이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도대체 왜 이럴까. 유난히 눈길이 가는 곳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안정적 사업을 바탕으로 펀더멘털이 튼튼해 일반 주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점이다. 꾸준한 수익을 바탕으로 돈이 상당량 쌓여있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든 배당을 확대하든 뭐라도 하면 좋을 텐데 수년째 이 돈을 은행 예금에만 넣어놓고 있다. 예금에 넣어둔 현금량이 시총보다 큰 곳도 더러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말 못 할 또 다른 고민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너십 대물림이다. 우리나라 상속·증여 최고세율은 50%다. 주식 증여의 경우 증여 시점 앞뒤 2개월씩 총 4개월 평균 주가를 산출한 뒤 이에 맞춰 세액이 확정된다. 주식 한 주라도 더 물려줘고 싶은 부모는 주가가 오르는 게 싫다. 주가는 자식이 물려받은 뒤에 오르면 될 일이다.
여기에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곳도 있다. 부모 출자로 비상장 기업을 설립한 뒤 본사 거래로 사업이 돌아가게끔 만들고 밸류가 높지 않을 때 주식을 자식에게 넘겨 배당 수익으로 향후 주식 인수 자금을 차곡차곡 마련케 하는 옵션이다. 자식이 인수 자금을 충분히 모을 때까지 본체는 주가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이 전략은 기업 입장에서는 입에 올리기 부담스럽지만 투자자 눈에는 적나라하게 비치곤 한다.
정상적 거버넌스가 작동하는 기업이라면 이사회가 나서서 비정상적 행태를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너 일가가 사외이사 선임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내이사가 사외이사보다 많아 이견 제기가 큰 의미 없는 경우도 많다. 최근 만난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명망가 출신 이사일수록 몸 사리느라 말을 안 한다"며 푸념키도 했다.
오너십 대물림 그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현대차그룹의 3세 경영인 정의선 회장의 경우 그룹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진짜 문제는 같은 기업 주주라고 모두 다 같은 주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주들이 배당 확대나 주식 소각 등을 요구할 때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이를 거절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오너 일가 외에 수십 년간 주식을 계속 갖고 있을 주주가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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