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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도전에 직면한다. 도전의 양상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다. 기업 이사회뿐 아니라 외부 투자자까지 기업 이슈를 지적하는 곳은 많지만, 내외부 의견을 경청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벨은 파이낸스와 거버넌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목전에 둔 기업 면면을 조명, 기업 변화의 양상을 분석해본다.
삼영전자공업은 '일본계 상장사의 전형'이라는 오명을 써왔다.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국내 수요에 맞게 개발해 유통하는 사업 모델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는 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삼영전자 창업주와 일본기업 간 협력으로 지금껏 순항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 관건이다.
◇ 안정적 사업으로 축적한 수천억 규모 현금
삼영전자는 오랜기간 콘덴서를 제조하는 데 주력해왔다. 1968년 창업주인 고 변호성 삼영전자 회장 주도로 출범한 삼영전자는 1972년 일본케미콘의 투자를 받은 이후 이 회사 파트너십 등을 기반으로 국내 전자부품 업계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63억원을 기록하는 등 최근 10년 간 꾸준히 1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달성해왔다.
오랜기간 사업이 안정적으로 이어진 결과 삼영전자 안에는 상당량의 현금성 자산이 축적돼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개별기준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2512억원에 달한다. 전체 자산총액이 503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사실상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현금성자산은 대부분 예금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다.
삼영전자는 매년 빠짐없이 배당을 실시하고 있는데 최근 3년 간은 보통주 한주당 300원씩 매년 60억원을 결산배당했다. 시가배당율은 3.45%로 같은 시기 코스피 상장사 평균 2.72%를 웃돌았다. 14일 현재 삼영전자 시가총액은 2078억원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8배 수준으로 국내 대표적 저평가 기업 중 한 곳으로 여겨지곤 한다.
올초 인덕터 생산 기업 에스엔에이전자를 합작 설립하는 등 최근 신규 사업을 전개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일본케미콘 증자에 참여해 210억원을 투입하기 전 10여년 동안은 이렇다 할 투자 움직임이 없었다. 2000년 전후 성남전기 출자를 포함해 중국 청도와 홍콩 등지에 법인을 설립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이런 배경으로 2008년 전후 미국의 데칸밸류 펀드를 비롯해 국내 코스모투자자문 등이 지분을 매집해 경영에 개입하려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신영자산운용은 2010년 123만여 주를 집중 매입, 수년간 보유키도 했다. 삼영전자 주가는 2020년 일본 수출 규제 여파로 일시적으로 떨어진 바 있지만 대체로 1만원대 안팎에서 움직여왔다.
◇ '창업주 일가+일본케미콘' 협력 앞으로도 이어질까
현재 삼영전자의 단일 최대주주는 일본케미콘이다. 일본케미콘은 첫 출자 이후 증자를 실시, 25년 간 줄곧 지분 33.4%를 유지하고 있다. 삼영전자는 일본콘덴서 지분을 맞보유, 일본케미콘과 제품 거래뿐 아니라 기술도 제휴하고 있다. 일본 내 기업들 상당수는 거래 관계가 있는 상대 기업과 지분을 맞교환해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곤 한다.
삼영전자 창업주 일가 역시 거버넌스의 한 축을 받치고 있다. 현재 삼영전자의 개인 최대주주는 변동준 회장(
사진)이다. 창업주인 고 변호성 회장의 셋째 아들인 변 회장은 1995년 고 변 회장 타계 후 그의 지분 대부분을 상속받아 개인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고 회장 지분은 14.7%로 일가 친척 지분을 모두 합치면 16%에 육박한다.
여기에 삼영전자가 출자해 설립한 성남전기 등이 보유한 삼영전자 지분 등을 모두 합치면 과반 이상으로 사실상 일본케미콘과 창업주 일가 협력으로 거버넌스가 구축돼 있는 셈이다. 삼영전자 이사회는 사내이사 6명 사외이사 2명 등 이사 8명으로 구성돼 있어 사외이사가 이견을 제기해도 경영진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 문제가 없는 구조다.
이사회 의장은 변 회장이 맡고 있으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내부거래위원회 등 이사회 산하 위원회도 설치돼 않아 이사들이 개별적 의견을 내기도 어렵다는 평가다. 일본케미콘과 자본 제휴로 제품과 기술 등을 국내에 들여와 이를 삼영전자 창업주 일가 주도로 국내 사정에 맞게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 모델이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다만 지금의 거버넌스가 계속 유효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2020년 투자업계 안팎에선 변 회장이 삼영전자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변 회장 일가는 2000년 삼영에스앤씨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환경센서 제조업체 삼영에스앤씨는 3년 전 코스닥 시장 상장 이후 줄곧 적자 상태다. 변 회장은 지난해 고희(古稀·70세)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