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와중에 한화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그룹 내 태양광 사업 소 기업집단을 구성한 '한화에너지'가 지주사 격 법인인 '한화'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했다. 고려아연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중이던 한화 지분을 매각했고 이를 한화에너지가 인수했다. 한화에너지는 지배주주 3세인 김동관 부회장을 비롯한 3형제가 지분을 전량 보유한 법인이다.
한화에너지는 2000년대 설립된 '여수열병합발전'을 전신으로 한다. 이후 10여 년이 넘는 기간 수 차례 합병·분할 작업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이 기간 한화 지분을 꾸준히 사 모으며 후대 경영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 보유분을 급격히 늘리며 3세 경영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너지는 내달 한화 지분율을 22.16%까지 늘릴 전망이다. 한화에너지는 고려아연으로부터 한화 지분을 사오는 거래를 추진 중이다. 지난 6일 계약을 체결하고 총 543만6380주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동 지분은 한화 전체 발행 주식수의 7.25%다. 예정된 거래 종결일인 오는 12월 9일에 매매가 마무리되면 그룹 내 한화에너지 영향력은 크게 강화된다.
한화 그룹 지배구조는 '김동관 부회장 등 3 형제→한화에너지→한화' 형태로 이뤄져 있다. 한화 아래에 '한화생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한화갤러리아' 등 주요한 계열사들이 위치해 있다. 한화는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을 30~40%대 수준으로 확보해 경영하고 있는 형태다. 이렇다 보니 한화에 대한 공고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상위 지배구조 구성이 그룹 경영권 확보의 키 포인트가 된다.
한화그룹은 고려아연과의 이번 주식 매매 계약을 통해 수직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화하게 됐다. 현재 한화는 김동관 부회장을 필두로 지배주주 3세 3형제의 그룹 내 입지를 다지는 것이 승계 작업에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이번 주식 매매 계약을 계기로 어느 정도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변화가 가시화됐다.
설립 후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화 지분을 10% 조금 못 미치게 확보했던 한화에너지는 올해에만 12%가 넘는 물량을 새로이 늘린다. 1년 여 만에 한화에 대한 한화에너지 지배력이 9% 수준에서 22%대로 올라서는 그림이다.
지배주주가 승계 작업 대비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적기이기도 했다. 한화에너지가 자금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시기였다. 우선 한화의 경우 현재 밸류가 기업 규모 대비 상당히 저평가된 상황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25배에 그친다. 1주당 가격이 주당순자산가액의 25% 수준으로 한화에너지 입장에선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 소요 부담을 경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장 앞서 진행한 공개매수 가격과 비교해도 금번 주식 매매 계약은 유리하다. 한화에너지는 지난 7월 1주당 3만원에 한화 주식 공개매수를 실시했다. 당시 예정했던 600만주엔 못 미쳤지만 전체 발행 주식의 5.2% 수준인 389만8993주를 새롭게 확보했다. 이번 계약에선 그보다 가격이 떨어진 주당 2만7950원에 취득가액이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금번 거래는 고려아연과 한화 양측에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한화에너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단가에 당초 목표했던 취득분 이상을 확보하고 매도측인 고려아연은 대규모 자금을 수혈할 수 있게 된다. 양사간 총 거래대금은 1519억4682만원이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에너지 외 다른 계열 법인이 한화 주식을 직접 취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룹 내 지분 매입이 가능한 법인이 매수 측으로 나선 것"이라 말했다.
한화에너지의 한화에 대한 연결 고리가 공고해 지면서 지배주주 일가 간 직접적인 지분 이동 필요성도 낮아졌다. 한화 최대주주인 김승연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보유분을 3형제에게 반드시 증여 혹은 상속하지 않아도 3세 경영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지배 지분 증여가 이뤄진다고 가정했을 때 세금 납부 목적으로 물량을 일부 처분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감소한다.
향후 그룹 내 한화에너지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는 방향도 경영권 승계 일환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지배주주 일가가 한화 보유분을 한화에너지로 넘기는 식으로의 시나리오다. 이를 통해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3형제가 모두 한화에너지 100% 주주로 등극하고 한화에너지는 한화에 대한 지배력을 더 키울 수 있다. 현물출자 방식의 거래다. 해당 거래가 이뤄진다고 단순 가정하면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율을 54% 수준(고려아연과의 주식매매계약 종결 후 지분율)까지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