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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묘수의 결과

최명용 서치앤리서치(SR)본부장 겸 부국장  2025-01-24 07:59:31
묘수 또는 묘착. 바둑이나 장기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착수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고려아연과 연관 검색어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묘수'다.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은 연이은 묘수로 판을 흔들고 있다.

고려아연의 첫번째 묘수는 유상증자였다. 지난해 10월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를 공개매수했다. 영풍그룹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을 매집하자 맞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자사주매입까진 예상한 수였다.

자사주 공개 매수 뒤 일주일 만에 급작스레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판을 흔들었다. 자사주 공개 매수에 들어간 자금을 확충하고 영풍 측 지분율을 희석시키기 위한 한 수였다. 하지만 유상증자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장과 금융당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첫번째 묘수는 악수가 됐다.

두번째는 집중투표제 제안이다. 고려아연은 23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이사선임안을 두고 영풍 측과 표대결을 벌여야 했다. 고려아연은 유미개발이란 회사를 통해 집중투표제를 제안했다. 유미개발은 최윤범 회장의 모친인 유중근씨가 대주주로 있는 곳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들이 뽑는 이사 수에 따라 자신의 표를 한명의 후보에게 몰아주는 제도를 말한다. 표 대결에서 불리한 최윤범 회장 측이 특정 이사들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해당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이 역시 묘수로 꼽혔으나 최근 법원에서 '불허한다'는 가처분 판결을 받게 됐다.

이대로 주총에 들어가면 고려아연이 질 게 뻔했다. 시장에선 영풍 측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고려아연은 영풍 측 의결권을 무력화시키는 또 하나의 카드를 꺼냈다.

고려아연은 호주에 있는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란 회사를 통해 영풍 지분 10.3%를 매입했다. 최윤범 회장 계열SMC가 매입한 영풍 주식은 10.3%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번 거래로 고려아연 → 선메탈홀딩스 → 선메탈코퍼레이션 → 영풍 → 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면 영풍의 고려아연에 대한 지분 행사가 어려워져 표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순환출자 제도를 활용해 주총의 표대결을 제도 해석의 판으로 뒤바꿨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은 돈 싸움이면서 명분 싸움이다. 영풍그룹과 MBK 연합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고려아연의 지분을 노리고 있다. 반면 고려아연은 지역 정치권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영권과 국가기술을 지킨다는 대의명분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찌보면 명분 싸움에선 고려아연이 우위에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이지만 한국에선 공격하는 자보단 방어하는 자에게 동정표를 던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수차례 묘수는 시장과 당국과 법원로부터 멀어지는 수가 됐다. 마지막엔 제도까지 이용하며 판을 흔들었다.

묘수는 판을 뒤집고 경기의 승부를 뒤집는 신의 한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공법 대신 묘수에만 의존하면 명분을 잃기 십상이다. 주식회사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업가치와 주주들의 이익이다. 고려아연의 묘수들이 이 가치에 걸맞는 포석인지 곱씹어봐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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