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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대 그룹 재무 점검

독립한 효자 현대로템, 잉여현금 적자에도 기상 '맑음'

[현대차]④기존 선수금 소진, 납품대금 회수 시간문제…계열 의존도 5~8% 불과

고진영 기자  2025-01-24 15:22:54

편집자주

한국 경제를 이끌어오던 10대 그룹은 작년 각자의 위기를 맞았다. 삼성은 반도체 경쟁력에 대한 위기등이 켜졌고 SK는 배터리 사업의 정상화를 노렸지만 '캐즘'이라는 복병을 맞았다. LG와 롯데, 한화는 화학 시황 부진이라는 악재를 맞이했다. 2025년이 밝았지만 새해의 활력보다는 위기 극복에 대한 간절함이 더 드러나 보이는 배경이다. THE CFO는 10대 그룹 내 핵심 계열사들의 재무 현주소를 조망하고 올해를 관통할 재무 이슈를 살펴봤다.
현대로템은 완성차사업이 실적을 좌우하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가장 독립적인 계열사 중 하나로 꼽힌다. 계열 매출에 기대지 않고도 역대 최고 수주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골칫덩이었던 수년 전을 생각하면 확 달라진 위상이다.

현재 현대로템의 계열 매출 의존도는 5~8% 안팎에 그친다. 5%를 밑도는 현대차와 기아를 제외하면 현대차그룹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다. 비완성차 계열사 가운데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 영업이익은 2949억원으로 전년의 2배 넘게 점프했다.

현대로템은 2013년 상장 당시만 해도 그룹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원래 철도(레일솔루션)를 주력으로 했으나 2001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뒤 현대모비스에서 방산(디펜스솔루션)과 플랜트(에코플랜트) 사업을 양수한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기대감이 높았던 곳이다.

실제로 현대차·기아,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들은 자동차 생산라인과 제철설비 증설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현대로템에 일감을 뿌려줬다. 덕분에 현대로템은 2003년~2006년, 2010년~2012년 두 단계에 걸쳐 계열매출이 가파르게 늘었다. 2013년 현대로템에서 계열 매출 비중을 계산하면 29%에 달한다.

하지만 계열 수주를 발판으로 해외에 진출하겠다던 계획이 흐지부지된 데다 2015년께 철도시장에도 경쟁사들이 우수수 등장하자 현대로템은 차츰 점유율을 잃어갔다. 설상가상 그룹사 일감도 뚝 떨어졌다. 계열 주력사업이 성숙기에 진입, 설비투자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결국 2018년과 2019년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면서 현대차그룹의 ‘애물단지’ 소리를 들었다.


수익성이 개선된 것은 2020년부터다. 실적에서 저가 프로젝트 비중이 줄고 수익성 좋은 방산 비중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 같은 해 유휴부지 일부를 현대모비스에, 자회사 그린에어 지분을 현대제철에 매각하면서 약 1690억원의 대금을 받았다. 전환사채 주식전환과 토지재평가를 통해 자본 4900억원 규모가 확충되기도 했다.

여기에 대형 수주로 들어온 선수금 역시 현금흐름에 숨통을 틔웠다. 특히 최근의 실적 개선은 폴란드 수주에 성공한 디펜스솔루션부문이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5년 전엔 레일솔루션이 매출 절반 이상을 지탱하는 주력이었지만 2023년부터 디펜스솔루션이 추월한 상태다. 작년 9월 말 기준 디펜스솔루션이 매출의 50%, 레일솔루션이 36.7%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2년 7월 폴란드 군비청과 파생전차 1000대 등 군수품을 납품하는 내용의 기본계약을 260억원달러 규모로 체결했다. 한달 뒤엔 폴란드 군비청에 K2전차 180대를 공급하는 1차 실행계약(K2 Gap-Filler)을 맺었다. 33억6000만달러 규모다. 현재 84대의 납품을 마쳤으며 나머지는 올해 공급할 예정이다.

계약에 따라 현대로템은 수주금액의 30%를 3회에 걸쳐 받았다. 덕분에 2019년 7000억원대에 불과했던 현대로템의 선수금(계약부채 포함)은 2023년 말 1조7900억원 규모로 뛰었다. 선수금이 유입되면서 2021년 적자였던 잉여현금은 2022년 6682억원 흑자로 전환, 2023년엔 653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잉여현금(배당지급액 제외 기준)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지만 부정적 신호로 보긴 어렵다. 미리 받은 계약금이 소진되고 수주 프로젝트가 진척되면서 운전자본투자가 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납품 대금은 폴란드 정부가 지급하며 추후 공급 일정을 감안하면 현금흐름 개선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폴란드로부터 추가로 수주할 물량도 남아 있다. 기본계약 1000대 가운데 1차로 총 180대 분량을 계약했고 현재 2차 계약체결을 위한 협상 중이기 때문이다. 2차 물량은 NDA(비밀유지협약)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지만 역시 180대로 알려졌다. 2차 계약 뒤에도 추가로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이 600여대 남아 있는 셈이다.

주춤했던 레일솔루션부문 역시 2023년 8조원에 육박하는 수주를 올렸다. 올해부터 매출에 반영될 전망인 만큼 본격적 회복이 예상되고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 총 수주잔고는 18조9933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폴란드 K2전차 2차 계약에 대해 “현지의 생산라인 개설 등 논의할 부분이 있어서 다소 지연되긴 했으나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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