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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내민 '정관변경' 카드…66.7% 지지 필요

특별결의 사안, 주주 2/3 동의 받아야…'3%룰'로 MBK-영풍 의결권 제약

원충희 기자  2024-12-24 16: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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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고려아연이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하는 안과 집중투표제 도입 등 정관 변경 의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한다. 지분율이 높은 MBK-영풍 연합에 대적하기 위한 최윤범 회장의 언더독(Under dog) 전략이다. 이를 통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약화시키고 소액주주를 연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기업의 헌법인 정관 변경은 특별결의 사안인 만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 3분의 2이상 동의를 얻어야 통과될 수 있다. 의결권 지분 66.7%를 확보해야 실현이 가능하다. 반대로 MBK-영풍 측은 33.4%를 결집시키면 의결을 저지시킬 수 있지만 '3%룰'이 난관으로 떠올랐다.

◇이사 수 제한·집중투표제 상정, MBK-영풍 '겨냥'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내달 2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 안건을 확정했다.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하는 정관 변경의 건과 집중투표제 도입의 건 등을 상정키로 했다. 소액주주 권한 및 보호장치 강화, 이사회 독립성과 다양성을 위해 이들 안건을 상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들 안건 중 이사 수 제한은 MBK-영풍 측의 이사회 진입 전략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9월 말 기준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원 13명 가운데 5명은 내년 3월에 임기가 도래한다. 이를 노려 MBK-영풍은 14명의 이사 선임을 주주제안으로 꺼내 들었다.

고려아연 정관(제5장 28조)에는 이사를 3인 이상으로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정원 수에 대한 조항이 없어 이론적으로는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 이사 수 과반을 손에 넣은 후 내년 3월 주총까지 버티면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5명은 자동적으로 빠지는 만큼 MBK-영풍이 자연스레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

*2024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발췌

집중투표제도 마찬가지다. 주주가 특정 이사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예컨대 이사 선임안 3건, 즉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현재는 주주가 각 안건(각 1명)당 찬반을 표시할 뿐이지만 집중투표제는 3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액주주나 외국인 투자자들도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할 이사를 선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달리 말하면 대주주에게 불리한 안건이다. MBK-영풍의 의결권 지분은 고려아연의 자기주식을 제외하면 46.69%로 최윤범 회장(우호지분 포함)을 7~8%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의안 상정은 지분율이 밀리는 최 회장 측이 언더독 전략이다.

◇MBK-영풍, 특별결의 저지선 확보가 관건…문제는 '3%룰'

주총 의결은 보통결의와 특별결의로 나뉘는데 정관 변경은 특별결의 사안이다. 상법에서 특별결의 충족 요건은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의결권 지분 100%가 출석한다고 가정할 경우 66.7%의 찬성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반대로 MBK-영풍은 특별결의 저지선(의결권 33.4%)을 확보하면 안건을 무산시킬 수 있다. 이미 46% 이상을 확보한 만큼 언뜻 보면 유리한 고지에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상법(제542조의7 제3항)에 있는 '3%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를 정관에 넣지 않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사가 정관 변경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반영할 경우 3% 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이는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집중투표제 도입 시도를 막아 세우는 걸 제약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정부는 소액주주 권익을 위해 집중투표제를 권장하고 있으며 지배구조 핵심지표 15개 항목 중에서도 집중투표제 채택 여부를 포함시켰다.

최 회장 측 우호지분 가운데 의결권 지분을 3% 이상 가진 곳은 한화 등 손에 꼽을 정도로 분산된 편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전략이다. MBK-영풍 측을 보면 영풍은 의결권 지분의 28.97%, MBK파트너스(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8.91%, 장형진 영풍 고문이 3.97% 등 3명의 주주에 41.86%가 쏠려있다. 3%룰이 적용되면 이들의 의결권은 9% 수준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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