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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가격 만능주의 제동, 대기업 합병 논란 '지속'

SK·두산, 일반 주주 고려 안한다는 비판 직면…현금 쓰는 한화도 정공법vs편법 논란

박기수 기자  2024-07-25 11:20:35
SK그룹과 두산그룹 등 국내 대기업집단이 사업 구조 개편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대주주를 위한 합병비율 논란이 올해도 지속하고 있다. 두 그룹의 공통점은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업 간 합병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또 합병 과정에서 각 기업의 가치를 산정할 때 주가 등 시장 가격을 기반으로 밸류에이션이 이뤄졌고, 이것이 곧 오너 일가 등 일부 주주들만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장 원리에 따라 주가 등 시장가격으로 밸류에이션을 진행하는 것은 규정 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전체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보호하는 판단이 이사회 차원에서 내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SK·두산 사례 외 2010년대 중반 삼성그룹의 합병 이슈도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이런 논란을 사전에 회피하기 위해 오너 3세 회사가 지주사의 지분을 직접 취득하는 정공법을 따르고 있지만 이 역시도 일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주가대로 했으니 문제 없다? 일반 주주 불만 심화

25일 재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24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주식의포괄적교환·이전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또는 증권신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혹은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 표시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해 두산밥캣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부문을 분할하고, 투자부문과 두산로보틱스를 합병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이전하는 개편안을 추진 중이다.

이후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캐시카우' 두산밥캣과 아직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이 현재 기준 비슷해 교환비율로 1:0.63이 정해졌다. 결과적으로 대주주인 두산은 1원도 들이지 않고 두산밥캣의 지분율을 14%에서 42%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일반 주주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지점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문제는 상장사-비상장사 간 합병이라는 점에서 두산그룹 케이스와 성격이 일부 다르다. 핵심은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자산가치와 기준시가 중 어떤 것으로 볼 지다. 원칙 상 기준시가로 보지만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한참 못 미칠 경우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할 수 있다.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시점에서 SK이노베이션이 기준시가로 합병가액을 산정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SK E&S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현물 상환 방식도 논란거리다. SK E&S는 RCPS를 도시가스 자회사 지분으로 현물 상환할 것을 가정하고 주식 가치를 평가했다. 현금 상환보다 현물 상환의 장부가액이 훨씬 낮았기 때문에 이 가정으로 SK E&S의 주식가치가 상승해 합병비율에도 영향을 줬다. SK이노베이션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SK E&S의 합병비율이 높을 수록 합병 후 주식 가치가 희석된다. 반면 SK E&S의 지분 90%를 보유한 SK 지주사 SK㈜는 더 많은 합병 법인의 지분을 받게 돼 유리하다.

대기업집단의 합병비율 문제는 한번 불거지면 길게는 몇 년 동안 이어지는 장기 이슈로도 이어진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밸류에이션 극대화 논란으로 경영권 승계에 꼼수를 쓴게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그 후로 법정을 오가야 했다. 무려 9년이 지난 올해 초가 돼서야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양 사 합병을 부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삼성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회사로 품고 있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기업으로 재인식하면서 수조원의 평가이익을 낸 것을 의혹으로 바라봤다. 이처럼 회계 기준의 변경 건도 문제의 소지가 되는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 산정은 매우 민감한 문제로 여겨진다.

주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이사회의 역할도 요구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사회의 역할은 대주주 등 주주 일부가 아닌 일반 주주를 포함한 전체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면서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실익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수천억 쓰는 한화도 '논란'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이 있었을까.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밑으로 배치하고 싶었다면 자금 조달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두산밥캣의 지분을 인수하면 그만이었다. 두산밥캣의 시가총액과 보유 지분율(46.06%)로 따지면 약 2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두산로보틱스의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지주사 ㈜두산이 자금 지원을 하는 등의 방법도 고려할 수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SK E&S와의 합병 목적이 자회사 SK온 살리기였다면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자산가치로 산정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 경우 SK→합병 SK이노베이션의 지분율이 50%대에서 40%대로 하락한다. 40%대가 된다고 해서 SK의 지주사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된 사례들이 현금 소요가 없는 '합병'으로 인한 이슈였다면 이와 달리 비교적 정공법으로 여겨지는 사례도 있다.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의 오너 3세들은 개인회사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그룹의 최상위회사 ㈜한화의 지분을 직접 취득하는 방식으로 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최근 일부 논란이 있다. 이달 초 한화에너지는 한화의 보통주 600만주(8%)를 1800억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1주당 3만원이었다. 발표 당시 주가 대비 공개매수 가격이 더 높았지만 한화의 순자산가치 대비 너무 싸게 사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24일 공시에 따르면 한화에너지는 목표치인 8%에서 5.2%의 지분만을 매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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