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주요 금융지주 인사의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통합 하나은행을 이끈 은행장은 지금까지 모두 4명 나왔다. 이들을 살펴보면 그 누구도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던 인물이 없다. 초대 은행장이었던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부터 현재의 이승열 행장까지 모두 안팎의 예상을 깬 깜짝 인사로 꼽힌다.
함 회장 이후로는 연임에 성공한 인물이 없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주요 시중은행의 행장은 기본 2년 임기에 추가로 1년을 더해 3년의 임기가 주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다만 하나은행은 아직 추가로 1년을 더한 은행장이 나오지 않았다. 영업환경이나 실적이 다른 은행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볼 때 그만큼 내부 기준이 한층 깐깐해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안팎 예상 깬 '깜짝 인사' 함영주 회장은 2015년 당시 통합 은행장 후보로 올랐던 3인 가운데 가장 약세로 평가받았다. 서울은행 출신인 데다 내부에서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은행 본점의 전략·기획 업무를 맡아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가 하나은행 출신도 외환은행 출신도 아니라는 약점이 막판에 오히려 강점이 됐다. 입행 이후 줄곧 영업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온 점도 보탬이 됐다. 통합 과정에서 영업력에 상처를 입은 하나은행을 이끌 적임자란 평가를 받았다.
지성규 전 행장 역시 선임 당시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그는 전임과의 나이 차이가 무려 7살에 이른다. 처음 은행에 발을 내디뎠던 시기는 함 회장이 1980년, 지 전 행장이 1989년으로 9년 차이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은행에서 CEO의 입사 연도나 나이는 조직 내부뿐만 아니라 은행권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인물이기도 했다. 은행 경력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지 전 행장이 은행장으로 선임된 시기는 하나은행뿐만 아니라 은행권 전반에서 글로벌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 전 행장과 같은 시기 신한은행장에 오른 진옥동 전 행장 역시 전체 은행 경력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일본에서 보냈다. 지 전 행장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인물이었던 탓에 깜짝 인사로 여겨졌다.
◇최근 2명은 계열사 대표 거쳐 박성호 전 행장은 하나금융 내부에서 차근차근 정석대로 길을 밟은 준비된 은행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은행에 줄곧 몸담아온 데다 영업, 전략, 디지털, 글로벌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치며 궂은 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전임 행장들이 연임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등판 시기가 다소 빨라졌다. 깜짝 인사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승열 행장은 외환은행 출신의 첫 행장이다.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에 인수된 뒤 하나은행 경영기획부 부장과 하나금융 그룹재무총괄(CFO) 부사장, 하나은행 경영기획그룹 겸 사회가치본부 부행장을 지냈다.
박 전 행장과 이 행장은 모두 계열사 대표를 거쳤다는 공통점도 있다. 박 전 행장은 하나금융티아이, 이 행장은 하나생명 대표이사 경험이 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외부에서 보기에 은행장을 배출할 만큼 무게감이 있거나 비중이 큰 곳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그 어느 계열사 대표여도 차기 은행장이 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의미다.
전반적으로 세대 교체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점 역시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지성규 전 행장이 2019년 취임했을 당시 시중은행장 가운데 가장 젊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으나 이후 행장들은 지 전 행장보다 많은 나이에 취임했다. 이승열 행장의 경우 지 전 행장이 취임했을 당시 나이보다 4살이 많다. '고졸 신화‘로 행장에 이어 회장에까지 오른 함영주 부회장과 달리 학력 역시 상당히 화려해졌다.
4명 중 2명은 하나은행 출신, 나머지는 각각 서울은행, 외환은행 출신이다. 사실상 출신 은행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은행장 선임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