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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리더십이 변화 기로에 섰다. 연말 5대 은행장 임기가 일제히 만료되면서 CEO 연임 또는 교체 결정을 앞두고 있다. 금융감독원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적용되는 첫 CEO 승계 시즌으로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 지주 회장과의 역학관계, 임기 중 경영 성과, 금융 당국의 기준이 변수로 작용한다. 은행장들의 재직 기간 성과를 돌아보고 리더십 교체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이승열 하나은행장(
사진)은 함영주 회장 체제 하나금융의 키맨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함 회장의 행장 시절 CFO를 맡았고 함 회장의 지주 CEO 취임 뒤에는 행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재무 전문가로 영업통인 함 회장의 약점을 보완했고, 외환은행 출신으로 '비하나-비외환' 이력을 가진 함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 러닝메이트다.
이 행장의 첫 임기 만료 후 거취는 운명 공동체인 함 회장에게 연동돼 있다. 함 회장이 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할 경우 한번 더 하나은행장을 맡아 그룹 리더십 안정에 일조할 가능성이 높다. 그룹이 지주 CEO 교체로 가닥을 잡으면 이 행장은 차기 회장 주자 중 1명으로 부상해 다양한 변수가 생긴다.
◇CFO·행장으로 함영주호 '러닝메이트' 맹활약 이 행장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하나맨이 된 건 2015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하면서다. 하나금융의 일원으로 약 9년 간 재직했다.
이 행장이 단기간에 그룹 내 존재감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배경에는 함 회장과의 인연이 있다. 함 회장은 2015년 통합 하나은행장에 취임한 해의 연말 정기 인사에서 이 행장을 경영기획그룹장으로 낙점했다. 경영기획그룹장은 CFO로 행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역할로 이 행장은 단숨에 수뇌부에 합류했다.
함 회장이 양사 합병 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이 행장을 CFO로 발탁한 건 조직 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함 회장은 서울은행 출신으로 하나은행에 합류해 충청영업그룹을 전국 1등으로 올려 놓으면서 구성원에게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만 새 식구가 된 외환은행 출신까지 포용하려면 이 행장이 필요했다.
주특기 측면에서도 이 행장과 함 회장은 궁합이 맞았다. 함 회장은 하나금융 최고의 영업통으로 꼽힌다. 회장에 취임한 후에도 영업본부장을 방불케하는 행보로 영업 일선에 힘을 실었다. 반면 이 행장은 재무 전문가다. 함 회장이 영업에 힘을 쏟느라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재무 아젠다를 이 행장이 챙기는 식으로 호흡을 맞췄다.
함 회장은 하나은행장으로 지내는 3년 동안 이 행장을 CFO로 기용했다.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주도한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이 행장을 하나은행장으로 추천했다. 행장과 CFO, 회장과 행장으로 호흡을 맞춘 기간만 5년째다. 함 회장과 운명 공동체로 활동해 온 만큼 이 행장 거취의 최대 변수도 함 회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주 리더십 교체 여부에 달린 은행장 거취 함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 후 연임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나이 규정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금융은 이사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할 경우 이후 최초 소집되는 정기 주주총회일까지를 임기로 정하고 있다. 1956년 11월생인 함 회장은 2026년 11월 만 70세가 된다. 이후 정기 주총일인 2027년 3월까지 2년간 추가 임기를 소화할 수 있는 셈이다.
함 회장이 연임할 경우 이 행장의 행장 임기도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은행이 이 행장 체제에서 호실적을 냈을 뿐만 아니라 올들어 성장보다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임기 동안 함 회장의 지원을 바탕으로 영업력을 극대화했다면 추가 임기 때는 이 행장 주도로 내실을 다질 수 있다.
신임 회장을 선임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힐 경우 이 행장도 변화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 행장은 올초 지주 사내이사로 등재돼 지주 부회장 직위를 부여받았다. 마찬가지로 지주 부회장 직위를 가진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와 함께 후계 구도에 놓여 있다. 누가 회장으로 선임되도 은행 리더십이 함께 교체되는 수순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