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본능적으로 확장을 원한다. 모이고 분화되고 결합하며 집단을 이룬다. 이렇게 형성된 그룹은 공통의 가치와 브랜드를 갖고 결속된다. 그룹 내 계열사들은 지분관계로 엮여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지배력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 주요 의결기구인 이사회 간 연결고리가 필요한 이유다. 기업집단 내 이사회 간 연계성과 그룹이 계열사를 어떻게 컨트롤하는지를 살펴본다.
KB금융지주 이사회에서 국민은행장은 당연직처럼 들어간다. 이사진 전원이 참여하는 ESG위원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계열사 대표 후보 추천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 수장이 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추천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건 다른 금융지주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룹 내에서 은행의 영향력이 강한 데다 주로 은행 임원 출신들이 계열사 대표로 기용되는 등의 영향이다. 은행장으로선 계열사 대표 인선에 맞물려 인사 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양종희 그룹 회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고 사외이사 7명에 이재근 국민은행장이 기타비상임이사로 참여 중이다. 국내 5대 금융지주 중 그룹 산하 은행장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곳은 KB금융을 포함해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3곳이다. 이 가운데 KB금융이 눈에 띄는 점은 이 행장에게 계열사 대표 추천 권한도 부여한 점이다. 은행장이 타 계열사 대표 선임 과정에 관여하는 곳은 KB금융뿐이다.
이사회 안에서 계열사 대표 후보를 관리하는 산하 위원회는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다.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르면 대추위는 계열사 경영승계 계획 수립과 변경 권한을 갖는다. 회장과 사외이사 3인, 사외이사가 아닌 이사 1 등 총 5명으로 구성하는데 이사회 안에서 회장을 제외하고 사외이사가 아닌 등기이사는 비상임이사뿐이다.
이에 따라 현재 KB금융 대추위는 양 회장을 필두로 이 행장과 오규택, 최재홍, 이명활 등 3명의 사외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행장은 국민은행장 후보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이해관계가 상충할 우려가 있어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나머지 계열사 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는 관여하고 있다. 은행장 후보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은행 이사회 산하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관리한다.
KB금융지주가 기타비상임이사 자리를 국민은행장에게 내준 건 2017년 이후부터다. 그 전에는 행장이 아니더라도 부행장 이상 인사를 지주 이사회에 참여시켰다. 기타비상임이사에 반드시 은행 인사를 선임해야 하는 근거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KB금융이 은행 임원을 기용하는 것은 은행이 그룹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작년 한해 KB금융의 연결 순이익은 4조6319억원, 전체 실적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6%를 기록했다. 그룹 총자산 내 은행 비중은 70% 수준이다. 계열사 대표 상당수가 은행 출신이거나 은행 임원을 겸직하고 있는 점도 국민은행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KB국민카드와 KB캐피탈, KB부동산신탁, KB저축은행 등의 계열사는 현직 대표가 은행 출신이며 그렇지 않은 계열사도 과거 은행 출신을 대표로 기용한 바 있다.
KB금융 측은 이재근 행장이 계열사 대표 신분이 아니라 지주 이사회 멤버로 대추위에 참여하는 점을 강조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이재근 행장이) 지주 대추위에 참여하는 것은 계열사 대표인 은행장이라서가 아니라 이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며 "행장 후보를 선임하는 대추위에는 (이 행장이) 출석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해상충 문제도 발생할 우려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행장은 지주 이사회 내 대추위뿐 아니라 ESG 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ESG 위원회는 그룹 ESG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는 데 주력하는 소위원회다. 이명활 사외이사를 위원장으로 사내외이사와 기타비상임이사 등 등기이사 전원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 모두가 ESG 활동 전담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있지만 계열 은행장이 해당 위원회에 참여하는 곳은 KB금융과 신한금융 등 두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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