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금융감독원의 요구로 이번 지배구조 개편 관련 일부 보고서를 정정 공시했다. 다양한 문장이 수정되고 추가됐지만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다. '개편 후 사업적인 시너지 효과를 자신한다'와 '분할비율, 합병비율, 교환비율은 적법하다'다. 두산그룹 말대로 사업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시너지 효과가 결과라면 이를 위한 개편은 수단이다. 결과도 옳아야 하지만 수단부터 옳아야 한다.
당연히 적법할 것이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 자회사화하고 최종적으로는 흡수합병하는 이번 개편은 재무, 지배구조,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애초 적법한 틀 안에서 치밀하게 설계해낸 결과물이다. 적법하지 않으면 분할합병과 주식교환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 전문가가 적법하지 않게 설계했을 리 없다.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노하우와 전문가풀은 투자은행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럼에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비지배주주들 사이에서 개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비영리단체와 학계도 비판하고 있다. 그룹 최고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 대한 지주사이자 지배주주인 두산의 지배력을 끌어올리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개편 계획대로라면 두산밥캣에 대한 두산의 실질적인 지분율은 개편 전 14%에서 개편 후 42%로 높아진다.
반면 비지배주주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두산그룹이 적법함을 내세워 저변의 의도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굳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인적분할의 방법으로 내줘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인적분할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가 두산로보틱스 주식도 갖게 돼 성장을 동시에 향유할 수 있다는 두산그룹의 설명은 막연하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이 기준시가 기준 2조3371억원으로 평가되는 만큼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큐벡스를 두산포트폴리오홀딩스에, D20캐피탈을 두산로보틱스에 굳이 내줘야 하는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두산그룹의 설명대로 두산큐벡스와 D20캐피탈이 비핵심자산이고 에너지사업 육성에 재원이 필요하다면 진작 현금화했어야 한다. 하필 현금성자산이 1억원도 없는 두산포트폴리오홀딩스가 3709억원을 급조해 두산큐벡스를 사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시너지 효과와 무관하게 두산밥캣 지분을 내주고도 한 푼도 못 건지는 두산에너빌리티에 현금 확보의 명분을 만들어주려는 '당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의 지배주주이지만 100% 주주는 아니다. 두산만의 회사들이 아니라는 의미다. 비지배주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면 애초 상장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비지배주주의 무력감은 한국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뿌리 깊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가 된다. 기본으로 돌아가 상장회사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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