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국내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는 그룹의 탄탄한 물량을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광고업 특성상 경기 침체기에 업황이 꺾이는 경우가 있었다 하더라도 제일기획(삼성), 이노션(현대차), HS애드(LG)가 대기업 계열 상위 3사가 전체 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을 차지했다.
기본적으로 그룹 광고물량을 소화한다는 점에서 이들 3사의 출범과 사업구조 등은 대동소이하다. 사내 광고 전담부서로 출발해 그룹이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계열 물량을 받아 자연스럽게 사업 규모가 커졌고 이후 독립법인으로 출범하는 수순을 밟았다.
다만 경기 흐름을 타는 광고 업종의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지분구조 측면에서 각기 다른 방식을 택했다. 삼성그룹 안에서 최대주주 변화가 있던 제일기획, 오너가 중심의 경영권을 유지 중인 이노션, 외부 자금 유치 과정에서 지주사 체제를 출범했던 HS애드(옛 지투알) 등 '3사 3색'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광고산업 성장 함께한 상위 3사
한국광고총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9개 광고회사의 총 취급액은 전년 대비 10.4% 늘어난 24조8121억원이었다. 이중 상위 10대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84%(20조8218억원)였다. 이들 상위 10개사 가운데 절반이 대기업 계열사(삼성·현대차·LG·롯데·KT)다.
1위부터 5위까지 광고대행사 취급액 순위를 매겨보면 대체로 대기업집단 순위와 비슷한 점을 알 수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로 지난해 취급액이 9조원에 가까운 제일기획이 1위 자리를 놓치고 있지 않으며 현대차 계열 이노션, LG 계열 HS애드, 롯데 대홍기획, KT 플레이디 등이 뒤를 이었다.
광고산업은 1970~1980년대 경제 부흥기와 맞물려 외형 성장을 시작했는데 현재 남아있는 대기업 계열 광고사들도 이때부터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5대 광고사 중 취급액이 가장 많은 제일기획은 1973년 설립됐고 HS애드, 대홍기획 등은 1980년대 초 출범했다. 이노션(2005년 설립)과 플레이디(2010년 설립, 2016년 KT그룹 편입) 정도만 2000년대 들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회사로 볼 수 있다.
그룹 기반의 안정적인 물량을 소화하는 만큼 전체 광고시장을 놓고 봤을 때 이들 회사가 전체 취급액의 80%를 담당했다. 특히 상위 3개사인 제일기획과 이노션, HS애드의 합산 비중이 전체 취급액의 60~70%를 차지한다. 2020년 코로나19로 광고업황이 크게 꺾인 해, 광고회사 전체 취급액은 전년 대비 1조2000억원 줄었는데 같은 기간 상위 3사의 취급액이 1조원 정도 빠졌다. 3사의 역성장으로 전체 광고산업이 성장세를 멈췄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HS애드가 취급액 1조원을 넘어서며 현재까지 제일기획, 이노션과 함께 3대 광고대행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 각사의 취급액은 제일기획 8조9998억원, 이노션 6조4871억원, HS애드 1조8260억원 등이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2022년 9770억원의 취급액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9375억원으로 그 규모가 일부 줄며 주춤한 상태다.
◇제일기획·HS애드, 계열사 손바뀜…오너가 중심 이노션
광고산업 성장사에서 이들 3사 중심의 체제는 유지됐지만 각사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여러 변화가 있었다. 우선 1998년과 1999년 각각 상장한 제일기획과 HS애드는 오너가가 들고 있던 지분을 매도하며 계열사가 최대주주 자리에 앉았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그룹 차원에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
제일기획 최대주주가 오너가에서 그룹 계열사로 바뀐 것은 1998년 말이다. 당시 최대주주이던 이재용씨(현 삼성전자 회장)가 보유 지분을 장내매도하며 그 자리가 그룹 계열사인 삼성전자로 넘어왔다. 이후 이듬해 제일기획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삼성물산이 지분율을 1.81%에서 13.14%로 끌어올려 최대주주가 됐다.
이러한 지분구조는 2016년까지 이어졌다. 그룹 광고물량을 단순 소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그룹 내부에서 제일기획 매각 논의가 이어졌지만, 삼성전자가 삼성물산 지분을 전량 취득하며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단순 광고 에이전시를 넘어 삼성전자의 광고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 아래 구조 재편이 이뤄진 것이다. 실제 5조원대에 머물던 제일기획의 취급액은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2022년 급성장하며 지금은 9조원에 육박하는 물량을 다루고 있다.
HS애드의 경우 그룹 계열사가 최대주주 자리에 앉기까지 보다 복잡한 사연이 숨어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LG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LG애드(HS애드 전신)가 매각 대상으로 분류돼 최대주주였던 구연경씨(고 구본무 회장 장녀, 17.50%)를 비롯해 오너가가 지분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2002년 영국의 광고그룹 WPP가 투자사를 앞세워 장내외에서 지분을 전량 매수해 LG애드 최대주주 자리에 앉았다.
이후 WPP는 LG애드를 존속 지주사 지투알과 신설 사업회사 LG애드로 분할했다. 이러한 지주 체제는 2008년 ㈜LG가 지투알을 되사온 뒤에도 이어지다 지난해 지투알이 사업 자회사 HS애드(2008년 LG애드에서 사명변경)와 엘베스트 등을 흡수합병하며 막을 내렸다. 3사 합병 후 존속회사로 남은 지투알은 HS애드로 사명을 변경해 단일 브랜드 체제를 완성했다.
제일기획, HS애드 등과 비교했을 때 설립이나 상장 시기(2015년)가 늦었던 이노션은 오너가 중심의 지분구조 체제를 유지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누이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동일하게 40%씩 이노션 지분을 보유하다가, 정 회장이 보유 지분 20%를 MSPE Highlight Holdings AB에 처분하며 정 고문 최대주주 체제로 바꼈다.
이후 액면분할과 상장 등에 따른 지분율 변동이 있었으나 정 고문(17.69%)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정 회장 2%, 현대차정몽구재단 9%)이 여전히 30%에 가까운 지분율로 오너십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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