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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누군지 모르는 CFO

박서빈 기자  2024-02-15 07:52:32
외신을 보면 종종 접하는 소식이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행보로 주가가 출렁였다는 내용이다. 지난달엔 미국 곡물 회사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의 주가가 CFO의 휴직으로 20% 가까이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계 관행 조사 중 이뤄진 탓이었다.

국내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소식이다. 일단 CFO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 모든 기업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표이사(CEO)는 알아도 CFO는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업 담당자조차도 CFO가 누군지 헷갈려 하는 탓에 CFO 찾기 스무고개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국내 20대 그룹에 속하는 A사는 10년 전 경영지원본부 재경담당 임원을 CFO라고 밝혔다 지금에 와서 당시 CFO는 경영지원본부를 총괄하는 본부장이 맞다고 말을 바꿨다.

A사에서 경영지원본부장은 재무와 전략을 동시에 총괄하는 자리다. 본부장 산하에 재무 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임원이 바로 재경담당이다. 10년 전엔 재무 부문을 담당하는 임원을 CFO로 봤다 이제 와 서열에 따라 이를 총괄하는 본부장을 CFO로 다시 정정했다. A사 관계자는 "당시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답변을 갈음했다.

국내 10대 그룹에 속하는 B사는 인사팀에서 협의를 거쳐 재무지원부문장이 CFO라고 알렸다. 내부에서 재정부문장이 CFO란 항의를 받았다. 회계와 세무를 담당하는 재무지원과 조달을 맡는 재정부문이 나눠져 CFO가 누구인지를 두고 사내서 두 가지 말이 나왔다.

한편으론 이해되는 부분이다. 국내에 C레벨 체제가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다. C레벨은 소유주 한 명이 권력을 쥐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복수의 전문 경영인을 도입해 전문성에 따라 세분된 경영자를 두는 시스템을 말한다. 다국적 기업을 필두로 C레벨 체제가 등장했다.

모 기업 관계자는 "CFO를 누구로 밝힐 것인지를 두고 기존 임원의 업무 분장을 살피며 누구를 CFO로 볼 것인지를 역추적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마다 CFO의 업무가 완벽히 동일할 수는 없다. 각 사마다 조직 구성이 다르고 전문 경영인이라 하더라도 주어지는 권한에 차이가 있다. C레벨 도입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 분장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CFO가 누구인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젠 이런 혼선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CEO가 기업의 방향성을 설정한다면 CFO는 재무를 관리하는 자리다. 내부에서조차 CFO가 누구인지 모르는 기업의 재무적 투명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CFO를 헷갈려 하는 기업이 없는 때가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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