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과 매각 측(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 간의 HMM 인수협상 결렬로 팬오션의 대규모 증자 부담을 덜었다. 6조4000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가운데 2조~3조원 가량을 팬오션 유상증자 대금으로 조달하려는 계획으로 인해 팬오션 시가총액은 2조원대가 깨졌다. 딜 무산이 오히려 팬오션엔 기업가치 회복 청신호가 될 전망이다.
하림그룹 컨소시엄의 HMM 인수 본계약이 7일 끝내 무산되면서 하림지주와 팬오션 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하림그룹은 국적 해운사인 HMM을 손에 넣으면서 그룹 위상이 커지고 그 수혜는 지주사가 받는다.
이와 달리 팬오션은 기업가치 급락을 면치 못했다. 하림 측이 준비한 인수자금 6조4000억원 조달계획을 보면 2조~3조원 수준을 팬오션의 유증 대금으로 조달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팬오션 주가는 30% 가까이 하락하며 2조4000억원 수준이던 시가총액이 1조9000억원으로 추락했다.
증자용 자금을 끌어 모으는 것도 큰 부담인데다 주식 수가 많아질수록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영향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HMM이 건실한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배당 등으로 그룹의 출혈을 회복시켜줘야 하는데 매각 측의 경영개입이 계속되면 이 또한 쉽지 않다.
협상의 3대 난제는 △1조68000억원 규모의 HMM 영구채의 주식 전환을 3년간 유예 △정부 측 사외이사 임명권 등을 포함한 주주 간 계약에 대한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 △재무적 투자자(JKL파트너스)의 지분 보유기간 설정이었다. 하림 측은 영구채 전환과 사외이사 선임권에 대해선 양보했지만 결국 JKL의 주식 보유기간은 양 측의 이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시장에서 오히려 본계약 결렬이 하림그룹에 긍정적일 것으로 보는 이유다. 자금조달 계획 자체가 대규모 유증이 필요한 무리한 계획이었고 HMM 지분 57.9%를 인수해도 결국 HMM의 잔여 영구채가 전환될 경우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으로부터 독립경영을 보장받지 못해서다.
팬오션의 작년 4분기 실적은 매출액 1조 282억원, 영업이익 687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각각27.6%, 56.3% 감소했다. 평균 BDI(건화물선 운임지수)가 2033포인트로 전년 대비 33.7% 회복됐음에도 벌크사업 부문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대를 크게 하회했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 건화물 시황 회복 가능성을 낮게 전망한 팬오션이 시황 회복 이전에 4분기 계약을 미리 확정한 영향이 컸다. 컨테이너와 탱커 부문은 2023년 3분기와 유사한 수준의 실적을 거뒀다.
팬오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BDI는 2월 7일자 기준 1516포인트로 과거 5년 평균(2018~2023년) 대비 50% 높은 수준이다. 중국 철광석 항만 재고 증가와 철강 소비 둔화 우려로 철광석 선물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BDI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홍해 이슈로 인한 수에즈 운하 통행량 제한과 가뭄 이슈가 지속되고 있는 파나마 운하의 통행량 제한이 겹치며 운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