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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 HMM 인수

기업들의 묘한 언어…하림-JKL 입장문 다시 보기

2조~3조원 규모 인수금융 이자, 원금 상환 문제 불확실성 해소 필요성 제기

박기수 기자  2024-01-02 10:57:00
기업들의 언어는 묘하다. 이해관계자가 많이 얽혀있는 대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 주주 가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이벤트를 앞두고 업계에서 '설'이 돌 때 기업들은 대부분 가면을 쓴다. 인수설·합병설 등 '~설'이 돌 때 "네 맞습니다. 우리가 그걸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확실하게 밝히는 곳은 손에 꼽는다.

기업이 상대 주체와 맺은 비밀유지계약, '~설'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의 주가 변동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탓이다. 보통 '확정된 건 없으나,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이 기업의 대표적인 언어다. 긍정도, 부정도 어느 한 쪽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퇴로를 많이 열어두는 방식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되 어떤 행동을 취해도 모순되지 않는 최적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새해가 밝기 전 하림이 냈던 입장문을 재해석해보자. 하림과 JKL파트너스는 사실과 다른 의혹이나 부당한 추측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면서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배당 안하면 인수금융 이자는 어떻게?

하림-JKL은 첫 번째 주장으로 HMM의 유보금(현금)은 HMM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최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림-JKL은 입장문을 통해 "HMM 보유 현금은 현재 진행형인 해운 불황에 대응하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 하림그룹의 확고한 생각"이라면서 "MSC와 머스크(MAERSK)등 글로벌 해운사들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해운 불황에 대비하고 있는데, HMM은 이들에 비해 선대 규모 및 보유 현금이 월등이 적어 불황에 대비해 경쟁력을 키우는데 보유 현금을 최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하림-JKL은 "불황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배당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면서 "하림은 과거 팬오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M&A 이후 5년 동안 배당을 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고 밝혔다.

마치 HMM을 인수해도 사내 유보금으로 배당을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들리지만 '배당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주장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HMM 경쟁력 강화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HMM을 인수하는 주체가 팬오션이든 팬오션과 JKL이 공동 출자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든 간에 인수금융 이자비용은 HMM으로부터의 배당금이 될 공산이 크다. 인수금융 금리가 8%라고 가정하면 2조원을 빌리면 연 1600억원, 3조원을 빌리면 연 2400억원이 된다. 작년 3분기 누적 팬오션에서 이자로 빠져나간 현금이 1032억원인데 1600억원이든 2400억원이든 기존 팬오션이 내던 이자보다 큰 규모다.

해운업 경기 하락도 하림의 주장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인수금융 이자를 감내해야 할 팬오션의 영업이익은 2022년 대비 작년 반절 수준으로 감소했다. 작년 3분기 연결 누적 영업이익은 3102억원으로 2022년 3분기 누적 6250억원 대비 50.3% 감소했다. 영업이익이 줄면 이자는 당연히 내기 힘들어진다.

◇합병 안하면 인수금융 원금은 어떻게?

하림-JKL의 두 번째 주장은 '팬오션과 HMM의 합병이나 사업구조의 인위적 조정이 없을 것'이다. 하림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첫 번째 주장보다 비교적 완고한 주장을 내세웠다.

업계는 하림이 HMM을 인수하면 합병을 통해 HMM의 현금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인수금융을 상환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기했다. HMM과 하림의 덩치를 비교했을 때 하림 입장에서는 재무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인수금융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답안지였다. 다만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던 일이었고 업계의 의문 제기에 하림은 "HMM과 팬오션의 합병은 고려 안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팬오션-HMM이 아닌, 팬오션-JKL이 출자한 SPC와 HMM의 합병이 이뤄지면 어떨까. 어쨌든 하림은 거짓말은 하지 않은 것이 되고 인수금융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말장난 같지만 이런 추측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림의 자금력과 값비싼 HMM의 몸값 때문이다.

증자로 캐피탈 측면은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인수금융을 2조~3조원 일으킬 경우 이 부담은 오롯이 하림의 몫이 된다. 인수 이후 코로나19 직후 해운업 '대박'이 나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다면, HMM의 주가가 퀀텀 점프해 자본재조정 시점에서 굳이 합병 필요성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해운업계 전망은 장밋빛이 아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자금력 대비 덩치가 큰 매물인 HMM을 인수한다고 밝힌 시점부터 하림에 대한 의구심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라면서 "가장 큰 관심사인 인수금융 이자 문제와 원금 상환 방안에 대해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업계의 추측이 잦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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