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인벤토리 모니터

같지만 다른 에쓰오일 재고 증가, 바닥친 회전율

정유부문 재고자산, 5조원 돌파…코로나 이후 회전율 최저치

김동현 기자  2023-12-14 15:10:11

편집자주

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올해 에쓰오일 실적은 극심한 유가 변동성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고공행진하던 국제유가가 하반기 들어 역성장하기 시작했고 올해 2분기에는 정제마진(석유제품과 원유 가격 차이)이 배럴당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며 정유부문에서 적자를 내기도 했다.

올 하반기 개선되는 유가 흐름 속에 에쓰오일은 재고를 최대한 쌓았고 그결과 정유부문 재고자산이 5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지속되는 재고 비축 영향으로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를 의미하는 재고자산회전율은 최저치로 떨어졌다. 재고자산 평가액이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연말·연초 회전율 상승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 흐름 따라간 정유 재고자산

에쓰오일의 전체 재고자산은 최근 3년 동안 매년 1조원가량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2조1923억원이었던 전체 재고자산은 해를 거듭하며 3조원, 4조원대를 넘어섰고 올해 3분기 말에는 5조5220억원 규모의 재고자산을 기록했다.

전체 재고자산 증가세를 이끈 사업은 역시 정유부문이었다. 에쓰오일의 본업인 정유부문은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제품(휘발유·경유·항공유 등)을 시장에 판매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전반적인 글로벌 경기 상황에 따라 비축하는 원유(원재료)량이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매년 정유부문의 재고자산은 수조원대에 달한다. 에쓰오일의 또다른 사업부문인 윤활과 석유화학의 재고자산 규모는 많아야 2000억원대 수준이다. 사실상 에쓰오일의 전체 재고자산 규모를 정유부문이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발로 글로벌 경기 침체기에 들어선 2020년 정유부문 재고자산은 1조9614억원으로 2015년(1조4238억원) 이후 5년 만에 2조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매년 7~8회를 유지하던 재고자산회전율이 이 시기 6.4회로 내려가며 재고 소진에도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는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020년 에쓰오일의 매출(16조8297억원)은 전년 대비 31% 줄고 영업손실(1조991억원)을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점차 경기가 회복되며 자연스레 정유 수급도 개선돼 정유부문 재고자산 수치 역시 3조원(2021년), 4조원(2022년)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재고자산회전율 역시 8.6회, 9.3회 등으로 치솟으며 경기 회복의 흐름을 탔음을 보여줬다.


◇코로나 때보다 떨어진 회전율

지난해 4조원대의 재고자산 비축에도 높은 회전율(9.3회)을 보였던 것과 달리 올해는 재고자산 증가에도 회전율이 오히려 떨어졌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정유부문 재고자산은 5조1284억원으로 전체 재고자산(5조5220억원)의 93%를 차지했다. 재고자산회전율은 6.2회로 코로나19 때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동수요 회복에 힘입어 휘발유, 등유·항공유, 경유 등 주요 정유 제품 수요가 개선돼 올해 상반기(정유 재고자산 3조8999억원)까지 7회 수준의 재고자산회전율을 유지했지만 3분기 재고자산 급증 영향으로 전반적인 회전율이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전통적인 성수기인 연말·연초 동절기를 앞두고 사전에 재고를 비축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까지 재고자산 비축이 부정적인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정유사들은 원유 구입 시기와 제품 판매 시기까지 발생하는 차이를 재고평가손익으로 반영한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한 유가 하락이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결과 재고 관련 평가 손익도 플러스(+)로 전환됐고 이에 따라 올해 3분기 1828억원을 재고자산평가손실 환입으로 반영했다.

3분기 들어 상승하던 유가가 다시 하락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 비축한 기존 재고 물량을 성수기 기간 털어내야 재고자산회전율 상승 및 평가손실 최소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경기 위축에 따라 정유 수요 증가는 제한적이더라도 상대적인 공급 부족으로 업황 자체는 개선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