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은 1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2018년을 끝으로 자본적지출(CAPEX) 규모를 매년 수천억원 수준으로 유지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해 잔사유 고도화(RUC)·올레핀 다운스트림(ODC) 설비를 구축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2016년부터 3년 동안 매년 조단위의 CAPEX를 집행했다.
1단계 프로젝트 구축이 끝나고 약 5년여의 휴지기를 가진 에쓰오일은 다시 한번 조단위 투자 계획을 세웠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 투자라 불리는 샤힌프로젝트로, 회사는 2026년까지 9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입한다.
지난해 말 투자 최종 승인을 마친 에쓰오일은 올해 하반기부터 샤힌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1조원 규모의 CAPEX를 집행할 계획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CAPEX는 불어나겠지만 올해 상반기 저점을 찍은 업황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데다 현금창출력도 되살아나며 에쓰오일의 투자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다.
◇발목잡던 재고자산 마이너스, 정제마진 하락에도 NCF 회복 정유업계는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극심한 시황 변동성에 실적 롤러코스터를 탔다. 작년 상반기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제마진이 치솟으며 상반기에 초호황기를 누렸지만 이상급등의 여파로 하반기에는 정제마진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지며 에쓰오일 역시 큰폭의 실적 하락을 경험해야 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521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3조539억원) 대비 82% 감소했고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같은 기간 74% 줄어든 8938억원이었다.
수익성은 악화했지만 현금창출 지표는 오히려 개선되며 현금성자산(현금 및 현금등가물+단기금융상품 등) 규모는 1조9560억원까지 올라갔다. 에쓰오일이 2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쌓은 것은 2021년 말(1조9566억원) 이후 약 1년6개월 만이다.
올 상반기 현금창출 지표가 개선된 데는 부진한 업황 속에서도 재고자산을 털어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사의 실질적인 현금창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은 올 상반기 기준 1조890억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운전자본투자가 마이너스(-)로 전환한 덕분이다.
NCF는 총영업활동현금흐름(OCF)에서 운전자본투자 항목 등을 제외한 수치로 운전자본투자가 플러스(+)라는 것은 그만큼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유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까지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던 운전자본투자는 2021년 들어 플러스로 전환됐고 지난해 말에는 해당 수치가 2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쌓아둔 재고자산이 줄면서 현금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 가까스로 운전자본투자를 마이너스로 전환할 수 있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말 4조7000억원 규모의 재고자산을 쌓아둔 상태였는데 지난 6개월 동안 이를 4조2600억원 수준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상반기 시황이 좋지 않을 때 선제적으로 생산설비 정기보수를 진행한 덕분으로 정유, 윤활, 석유화학 등 사업부문별 재고자산이 모두 감소했다.
◇샤힌 투자액 70% 내부조달, 힘받는 하반기 앞으로 매년 조단위 투자가 예정된 에쓰오일에 현금창출력 회복은 안정적인 CAPEX 집행을 위한 필수 요소다. 에쓰오일은 전체 9조2580억원에 달하는 샤힌프로젝트 투자금액 가운데 71%를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한 현금으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이 가운데 2021~2022년 샤힌프로젝트 투자 명목으로 쓰인 금액은 716억원에 불과하다. 1조4833억원의 CAPEX 집행을 예고한 올해의 경우에도 상반기까지 3780억원을 집행하는 데 그쳤다. 하반기에만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기존 설비의 정기 보수 작업을 7월 중에 마무리한 데다 당장 올해를 보내는 데 필요한 현금 역시 비축한 상태로 보인다. 특히 올해 2분기 손익분기점을 밑돌던 정제마진이 다시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며 업황 호조에 따른 추가적인 현금창출까지 기대해 볼만하다.
보통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이다. 지난 4월 배럴당 4달러 아래로 내려갔던 월간 정제마진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며 현재는 연초 수준인 배럴당 10달러를 웃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