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이 2024년 임원인사를 통해 새 수장을 맞이했다. SK하이닉스 대표직을 역임한 이석희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30년 이상 반도체 업계에서 몸 담은 인물이다. 표면적으로는 연관성이 없는 분야이나 첨단 공정을 활용하는 제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장은 SK온에서 생산성과 수익성을 동반 상승시키는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2차전지 수율 잡아라" 특명…반도체 DNA 이식 예고
1965년생인 이 사장은 서울대 무기재료공학 학·석사를 마치고 1990년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에 입사하면서 반도체 산업에 발을 들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0년부터 11년 동안 중앙처리장치(CPU) 1위 회사 인텔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인텔에서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난 2013년 SK하이닉스로 복귀했다. 미래기술연구원장, D램개발사업부문장 등을 거쳐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고 2019년에는 사장으로 선임됐다. SK하이닉스 대표직을 내려놓고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플래시 사업부(현 솔리다임) 의장을 지난해 말까지 담당한 바 있다.
이 사장은 SK하이닉스를 넘어 세계적인 반도체 석학으로 꼽힌다. 그만큼 관련 전문성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2차전지 업체 사장으로 발탁된 건 다소 뜬금 없는 결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
SK온 관계자는 "(이 사장은) '인텔 기술상'을 3차례 수상하는 등 글로벌 제조업 전문가로서 SK온을 첨단 기술 중심의 글로벌 톱티어(Top Tier) 배터리 기업으로 진화시킬 최적의 인사"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반도체와 배터리는 '제조 기업'이라는 동일 분모가 있다. 반도체의 경우 여느 산업보다도 공정이 미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도 생산 난도가 높은 편이지만 정밀도 측면에서는 몇 수 아래다. 반도체 공장을 나타내는 키워드가 초미세먼지 한톨도 허용되지 않는 클린룸 강도나 수 나노미터(nm) 노광 기술 등인 배경이다.
특히 SK온은 2차전지 후발주자로 여겨진다. 이에 2010년대 중후반부터 유럽, 북미 등지에서 배터리 공장을 가동해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대비 수율(완제품 중 양품 비율)이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이유로 SK온은 수익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경쟁사와 달리 적자 기조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당초 올해 4분기 흑자 전환을 목표로 했으나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확대로 계획이 틀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사장은 부임 이후 최우선 과제로 수율 향상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반도체 첨단 공정 노하우를 SK온에 이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율이 높아지면 원가를 낮출 수 있고, 품질 향상으로 이어져 고객과의 거래 시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의 니켈 함량이 올라가는 등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요구되는 공정 수준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특히 생산라인 자동화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는 반도체 공장을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SK온은 고성능 자동검사 설비를 선제 도입하는 등 공장 무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장 내 인력을 최소화하면 국내외 인력 부족 사태를 해소하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진교원 SK하이닉스 개발제조총괄 사장이 SK온 COO로 합류한 바 있다. 당시 회사는 고객 대응력, 제품 경쟁력 등을 높이기 COO직을 신설한 바 있다. 그는 올해 8월 퇴임하긴 했으나 약 1년간 헝가리, 미국, 중국 등 SK온 공장 내 수율을 정상화하는데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SK온은 COO를 생산책임(CPO)과 사업책임(CCO)으로 분리했다. 각각 역할을 나눠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CPO는 최근민 부사장, CCO는 한온시스템 대표를 역임한 성민석 부사장이 맡고 있다.
이 사장과 진 사장 외에도 SK하이닉스 엔지니어 등도 꾸준히 SK온으로 넘어오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SK하이닉스 DNA를 가져와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시장 내 지배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미국 네트워크, 공급망 관리 노하우 등도 기대
기술적인 측면 이외에도 이 사장은 다방면으로 SK에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이상 인텔에서 일하면 쌓아온 북미 인맥이 대표적이다. 인텔의 경우 미국 기업 중에서도 로비 활동이 활발하고, 글로벌 공룡들과 교류가 많은 회사다. 이 사장 역시 인텔 출신으로 현지 네트워크가 풍부하다는 후문이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실제로 이 사장은 인텔과의 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 '인텔 낸드 부문을 비싼 금액에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견이 일자, 이 사장은 대기업 계열사 대표로는 이례적으로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당위성과 미래 가치를 역설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사장의 책임감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언급한다.
또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영향으로 미국 정부 또는 지역단체와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하다. 이 사장은 이를 원활하게 풀어갈 적임자"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인텔과 SK하이닉스에서 터득한 공급망 관리 방법도 SK온에 적지 않게 도움될 것으된다. 배터리의 경우 반도체 대비 원재료 비중이 높은 편이다. 소재, 광물 등 업체와의 협력 및 협상 과정에서 이 사장의 노하우를 활용한다면 전반적인 비용 절감이 이뤄낼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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