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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현대자동차 미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될 인물들은 현재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을까. 현직 CFO들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현대차 재경사업부장과 계열사 CFO가 눈에 띄는 현대차 CFO들의 '직전' 직책이다. 현대차 최대 해외법인인 현대모터아메리카(HMA) 재경담당과 현대차 회계관리실장도 주목할 만한 자리다.
◇'재경사업부장→CFO' 이동한 3명 먼저 현대차에서 재경사업부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가는 길 중 하나다. '재경사업부'는 CFO가 이끄는 기획재경본부 산하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을 개발하고 투자를 검토·추진하는 쪽이 기획 부문이라면 재경 부문은 자금 조달과 수익성 분석, 재무 건전성 관리를 맡는다. 이 부문을 책임지는 임원이 재경사업부장이다. CFO 역할의 한 축이자 전통적인 CFO 역할로 분류되는 업무를 이끄는 직책이다.
현대차가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 작업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CFO 자리에 앉은 11명 가운데 재경사업부장을 지낸 인물은 3명이다. 비율로는 27%로 압도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2020년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이후 CFO를 역임한 3명 중 2명이 바로 직전에 재경사업부장을 지냈다. 정 회장의 첫 번째 CFO였던 김상현 부사장(현 현대엔지니어링 재경본부장)과 최근 서강현 사장 후임으로 낙점된 이승조 전무다. 재경사업부장을 CFO로 등용하는 기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재경사업부장을 CFO로 선호하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는 CFO에게 기본적으로 효율성 관리를 주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3분기 누계 기준 현대차 영업이익률은 10%로 전년동기 대비 4%포인트(p) 향상됐다. 역대급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지만 내년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현대제철·현대모비스 CFO→현대차 CFO' 이동한 3명 현대차 CFO로 가는 또 다른 길 중 하나는 계열사 CFO다. 물론 모든 계열사 CFO가 후보에 오르는 건 아니다.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로 제한적이다. 현대차가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 과정에 있을 때인 1999년 CFO인 박완기 전 사장은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기획재경본부장 출신이다.
또 현재 현대차증권 대표를 맡고 있는 최병철 사장도 2016년 현대모비스 재경본부장에서 현대차 CFO로 옮긴 인물이다. 최근 현대제철 대표에 선임된 서강현 사장도 2021년 현대제철 재경본부장에서 현대차 CFO로 옮겼다.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는 정의선 회장보다는 정몽구 명예회장과 인연이 있는 곳이다. 정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의 회장을 지내며 경영 능력을 키웠다. 현대제철은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를 끌고 현대그룹에서 독립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차에 편입한 곳이다. 이후 2010년 일관제철소 준공이라는 성과를 냈다.
정의선 회장에게 상대적으로 인연이 깊은 곳은 기아다. 2000년대 중반 기아 대표로 근무하며 '디자인 경영'을 내세워 본인의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기아와 현대차 간의 임원 교류는 활발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기아 CFO가 현대차 CFO로 오거나, 현대차 CFO가 기아 CEO로 가는 등의 인사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HMA 재경담당과 현대차 회계관리실장도 핵심 경력 더불어 현대차 미국법인인 HMA(현대모터아메리카)에서 재경담당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CFO도 2명이나 있다. 현대차 CFO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차 대표를 지낸 이원희 전 사장과 김상현 부사장이다. 단 이 전 사장은 HMA 재경담당에서 곧장 CFO로 이동한 반면 김 부사장은 HMA 재경담당 이후 재경사업부장을 지낸 뒤 CFO에 선임됐다.
현대차 회계관리실장을 역임한 이들도 2명이나 된다. 김상현 부사장과 서강현 사장이다. 회계관리실장은 주로 상무급 임원이 앉는 자리로 사업보고서에 담을 계정들을 관리하고 내부회계관리자인 CFO를 지원한다. 김 부사장과 서 사장은 둘다 이사(현재 상무로 직급 통합) 직급에 있을 때 회계관리실장으로 각각 2년과 3년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