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임원 인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서강현 부사장을 사장 승진과 함께 현대제철 대표이사(CEO)에 선임했다. 이번에도 CFO를 맡은 뒤 영전하는 공식이 들어맞았다. CFO를 단순 참모나 곳간지기가 아닌 리더이자 전략가로서 대우하는 현대차의 인식을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은 17일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그 가운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이자 CFO인 서강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의 후임으로 낙점했다. 서 사장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공식 선출될 전망이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부터 현대차 CFO로 근무한 서 사장은 현대차의 수익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 2.3%였던 영업이익률은 2021년 5.7%, 2022년 6.9%로 지속 향상됐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져 3분기 누계 영업이익률은 9.6%로 뛰어올랐다.
서 사장에게 현대제철은 낯선 곳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력을 현대차에서 쌓았지만 2019년부터 약 2년간 현대제철 재경본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재경본부장은 CFO 자리다. 약 3년 만에 이번에는 CEO로 복귀하게 됐다.
최근 현대제철은 매출액은 증가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안정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영업적자를 기록했을 정도로 수익성 개선과 사업구조 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9월 강관사업부를 자회사로 분할한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재무 역량이 뛰어난 리더가 필요한 상황이다.
아울러 이번 인사로 서 사장은 현대차 역대 CFO 가운데 5번째로 CEO에 오른 임원이 됐다. 앞서 박완기 전 현대파워텍(현 현대트랜시스) 대표, 김뇌명 전 기아 대표, 이원희 현대차 대표, 최병철 현대차증권 대표 등 4명은 현대차 CFO 출신으로서 CEO가 된 이들이다.
CEO는 아니지만 그에 걸맞는 위치에 오른 현대차 CFO들도 있다. 이정대 부회장과 채양기 사장으로 두 임원은 CFO 이후 승진했을 뿐 아니라 그룹 컨트롤타워 조직인 '기획조정실'을 이끌기도 했다. 서 사장을 포함한 총 10명의 역대 현대차 CFO 중 7명이 사장 이상으로 승진했고 CEO와 기조실장을 역임했다.
이는 현대차가 CFO의 경험과 능력을 높이 평가할 뿐 아니라 CFO 자리를 참모가 아닌 리더로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가 2020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발생한 빈자리에 당시 CFO인 김상현 전무를 앉힌 건이다. 최고 의사결정 과정에 재무적 관점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김 전무는 1년간 CFO로 근무한 뒤 부사장 승진과 함께 원가혁신사업부장에 선임됐다. 그 또한 CFO 이후 영전한 또 다른 사례다. 그는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재경본부장에 선임됐다.
2020년 정 명예회장 퇴진 이후 현대차는 줄곧 CFO를 사내이사에 선임하고 있다. 이번에 현대제철 대표로 이동하는 서 사장도 지난 3년간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2021년 현대차는 그를 사내이사로 추천하며 "향후 대규모 투자와 수익성 개선을 계획하는 상황에서 이사회의 의사결정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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