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롯데쇼핑은 유통 대장주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판도를 흔든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적응력이다. 이마트는 쓱닷컴을 통한 이커머스 경쟁력이 기대를 모은 반면 롯데쇼핑은 전략이 모호했다. 애초 비슷했던 시가총액 차이가 벌어지면서 이마트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마트 주가는 지난해부터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시총이 연초 4조원대에서 1년 만에 2조원대로 떨어졌고 급기야 지지부진하던 롯데쇼핑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제 롯데쇼핑의 기업가치가 이마트를 도리어 추월한 상황이다.
◇이마트 '확장' vs 롯데쇼핑 '긴축'
5년 전만 해도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외형에 크게 차이가 없었다. 2018년 이마트의 연결 매출은 17조490억원, 롯데쇼핑은 17조8208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다 2019년 이마트 매출이 롯데쇼핑을 처음 역전했고 2020년 초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 발길을 끊으면서 롯데쇼핑은 백화점을 중심으로 연결 매출이 급감한다. 반대로 이마트는 22조원대로 뛰었는데 트레이더스와 노브랜드, 쓱닷컴 매출이 늘어난 덕분이다. 결국 2020년 말 롯데쇼핑은 이마트에 유통 대장주 자리를 내줬다.
이후로도 이마트는 지마켓, W컨셉코리아, 에스씨케이컴퍼니(스타벅스코리아)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정책을 이어갔다. 반면 롯데쇼핑은 매년 매출이 역성장했다. 2023년 상반기 이마트 매출은 약 14조4000억원, 롯데쇼핑은 7조2000억원으로 이마트가 두 배 가까이 많다. 매출성장률의 경우 이마트는 2019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까지 마이너스 성장률이 이어진 롯데쇼핑과 대조적이다.
이마트가 확장, 롯데쇼핑이 긴축에 중점을 뒀다는 점은 마진에서도 드러난다. 5년간 두 회사의 분기별 영업이익률 추이를 살피면 롯데쇼핑이 전반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쇼핑은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총 243개 점포(백화점 1개점, 마트 12개점, 슈퍼 146개점, 롭스 84개 점)를 매각하는 등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2021년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기도 했다.
다만 작년부턴 이마트의 확장 정책이 악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몸집은 커졌지만 판을 너무 벌려놓다 보니 이익방어가 안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엔 영업손익이 적자 전환했는데 마트와 트레이더스 등 본업이 부진한 와중에 고정비 부담이 확대됐고 연결자회사 신세계건설이 418억원의 영업적자를 본 탓이다.
◇접점 만난 전략…시총도 다시 교차
최근 신세계그룹이 예년보다 1년 빠르게 임원인사를 실시하면서 간판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한 것도 전략 변화를 암시한 것으로 짐작된다. 새로 부임한 CEO 대부분이 그룹 전략실 출신인데 당분간 투자보다 수익성 끌어올리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임명된 한채양 이마트 대표도 전략실 출신이다. 그가 에브리데이와 이마트24 대표까지 겸직하는 통합 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이번 인사에 롯데쇼핑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한화투자증권 이진협 연구원은 “롯데쇼핑도 롯데마트와 슈퍼부문을 강성현 대표가 겸임하고 MD부문을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이마트도 롯데쇼핑과 같은 통합 MD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판이했던 두 회사의 전략이 접점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롯데쇼핑은 MD전략 덕분에 2분기 매출총이익률(GPM)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2%포인트 높아지는 효과를 봤다. 또 3년간 진행해온 강도높은 구조조정 효과가 실적 개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컬처웍스와 홈쇼핑은 부진이 불가피하지만 할인점과 슈퍼마켓 등에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고, 이커머스 역시 물류비용을 아껴 적자가 축소되는 추세다.
분기 주당순이익(EPS)을 보면 이마트는 그간 꾸준히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올해 2분기 순손실로 음전환했다. 반대로 반복적인 마이너스를 보이던 롯데쇼핑은 2분기째 주당순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올 2분기 이마트 EPS는 -3791원, 롯데쇼핑은 4120원이다.
엇갈린 흐름은 기업가치에도 반영됐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시총은 대동소이했다. 롯데쇼핑이 우위를 보이긴 했으나 비슷한 규모,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 이마트가 완전히 앞질렀고 이듬해 하반기 시총이 5조원에 육박하면서 롯데쇼핑과 2조원 가까이 차이나기도 했다.
하지만 멀어졌던 그래프는 두 회사가 나란히 고전하면서 지난해 다시 교차한다. 올해 들어선 이마트가 재차 힘을 내는 듯했으나 지난달 이후로 롯데쇼핑이 이마트를 소폭 앞지르고 있다. 10월 17일 종가 기준 이마트 시총은 1조 9513억원, 롯데쇼핑은 1조 9802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