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이사회는 지난해 8월 케이잼(KZAM)에 약 7356억원을 투자하는 계획안을 승인했다. 2027년 말까지 케이잼의 동박 생산능력(캐파)을 연산 6만톤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1년 2개월이 지난 현재 대규모 투자 계획안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투자 규모 면에서는 이제 막 초기단계이지만 재고자산이 늘어나는 등 본격적인 양산에 앞서 시범 양산이 이뤄지고 있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동박은 그 수요가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를 주목한 고려아연은 2020년 3월 동박 생산 전문 자회사인 케이잼을 '단독'으로 설립했다.
◇동박사업은 '단독'으로, 올해 상반기 '3번째' 출자 동박은 황산니켈, 전구체와 함께 고려아연이 선택한 신사업 중 하나다. 차이가 있다면 황산니켈, 전구체 사업은 LG화학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반면 동박 사업은 단독으로 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황산니켈 생산은 LG화학과 합작법인인 '켐코', 전구체 생산은 마찬가지로 LG화학과 합작법인인 '한국전구체'가 책임지고 있다.
동박 사업을 책임지는 케이잼은 고려아연의 완전 자회사로 설립됐다. 합작법인 형태가 아니다. 무엇보다 기존 사업인 아연과 납 등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동박의 핵심 원료인 구리가 부산물로 얻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동박 업체들처럼 외부에서 동을 얻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더불어 고려아연은 해외 종속법인인 페달포인트(Pedalpoint)로부터 전자 부품 폐기물을 확보 한 뒤 여기에서도 동을 추출해 케이잼에 공급할 예정이다.
물론 구리를 확보하는 것과 동박을 만드는 건 다른 얘기다. 하지만 아연과 동박 제조 공정은 유사한 점이 많다. 기존 사업의 부산물과 기술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사업화도 용이할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이 점에 주목했고 2020년 자체적으로 동박 제조 기술을 개발하자 곧바로 케이잼을 단독 설립했다.
동박 원재료와 제조 기술이 확보된 상황에서 남은 건 생산시설 확보였다. 최초 설립 때 602억원을 출자한 뒤 지난해 6월에 400억원을 추가로 출자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 500억원을 또 출자했다. 뿐만 아니라 40억원을 단기 대여해 줬다. 도합 1540억원 이상을 전방위 자금 지원한 셈이다.
다만 지난해 8월 약 7356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500억원의 출자가 있은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 투자계획 진행률은 아직 10%도 채 되지 않는다. 출자든 대여든, 앞으로 지원할 자금 규모만 6800억원이 넘는다. 고려아연과 케이잼의 동박 사업은 이제 막 발을 뗀 것이다.
◇원재료 '동' 매입 개시...연내 '본격 양산 체제' 갖출지 관심 고려아연의 올해 목표 중 하나는 동박 양산이다. 고객사에 동박을 공급하는 본격 양산 체제는 아직 갖추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상반기 케이잼의 매출은 여전히 0원이다. 원재료 매입과 생산시설 가동 등에 비용이 발생하면서 6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보고서에서도 고려아연 측은 "케이잼의 올해 2분기 말 주요 생산 품목에 대한 용도와 매출액은 없다"며 "현재 신규 공장을 준비 중인 관계로 기재할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초기 캐파는 연산 1만3000톤 규모가 될 전망이다. 전 세계 동박 시장 점유율 1위인 SK넥실리스 캐파는 연산 약 5만톤(2022년 기준) 수준이다.
본격 양산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계획대로 지난해부터 시범 양산은 진행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월 발표한 케이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에 없던 재고자산이 지난해 74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95% 이상이 동박 원재료인 동으로 판단된다. 올해 상반기에도 고려아연과 케이잼 간에 26억원 이상의 거래가 있었다. 이 또한 동 매매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케이잼이 계획대로 연내에 동박 본격 양산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엇갈린 전망도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2024년부터 상업 생산이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케이잼은 현재 국내외 고객사 4곳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동박 생산시설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다. 2021년 조선 기자재 업체인 세진중공업으로부터 용지를 매입했다. 고려아연의 여러 온산제련소와 맞닿아 있어 원재료 확보에 적은 운송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시장 관계자는 "동박 설비에 사용되는 구리는 아연과 납(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되는 부산물을 사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낮고, 수익성 또한 타 업체 대비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