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은 '금속 제련'이라는 본업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기업이다. 과거에는 '무차입 경영' 기조를 고수했으나 최근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면서 차입금이 1년새 4000억원에서 1조원대로 불어났다.
차입금 증가와 금리 인상 영향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이자비용은 42억원에서 344억원으로 8배나 늘어났다. 하지만 영업이익이 26배나 많은 덕분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 레버리지 확대 신호탄2020년대 들어 고려아연은 '트로이카 드라이브(Troika Drive)' 전략을 입안하고 3대 신사업 추진을 공식 표명했다.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2차전지 소재 △자원 순환 등의 분야를 고려아연의 중장기 수익원으로 설정했다.
미래 신사업과 연관성이 뚜렷한 자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2020년에 배터리 핵심 소재인 전해동박을 제조하는 업체 '케이잼'을 설립했다. 고려아연은 케이잼을 겨냥해 2020년 600억원, 2022년 400억원 등을 잇달아 출자했다. 덕분에 연간 1만3000톤 규모의 동박을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을 조성했다.
시장 입지가 탄탄한 기업 지분을 사들이는 조치도 병행했다. 2022년 상반기에 3792억원을 투입해 호주에 자리잡은 풍력·태양광 발전 전문기업 '에퓨론'을 인수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전자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전개하는 미국 업체 '이그니오'를 종속기업으로 편입하는 데 4360억원을 썼다.
사업 확장 국면에서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총차입금은 1조498억원으로 2021년 말 4460억원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계열사들이 금융권에서 빌린 금액이 6189억원으로 전체 차입금의 59%를 차지했다.
차입금 확대와 금리 상승이 맞물리면서 이자 부담이 늘었다. 2021년 이자비용이 42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344억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8배 넘게 불어난 금액이다. 이자보상배율이 26.7배인 만큼 아직까지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이익률 하향세'와 '단기 편중', 잠재적 불안요소하지만 고려아연의 영업이익률이 △2020년 11.8% △2021년 11% △2022년 8.2% 등으로 낮아진 대목은 불안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021년(1조961억원) 대비 16%나 줄어든 9192억원으로 집계됐다.
공급망 불안정 문제가 대두되면서 금속 원재료비, 운송비 등의 변동성이 한층 커진 탓이다. 1건조메트릭톤(DMT)당 아연정광 수입액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2020년에는 톤당 평균 831달러로 나타났으나 2021년 1294달러, 2022년에는 1472달러로 집계됐다. 2년새 80% 가까이 가격이 상승했다. 생산비 효율화가 이익률 유지의 관건인 셈이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연결 총차입금 1조498억원 가운데 77.2%인 8101억원은 만기가 1년 안에 도래하는 대목도 눈여겨볼 사항이다. '단기'에 지나치게 쏠린 차입금 만기 구조는 재무 안정성을 저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등을 더한 유동성이 9440억원으로 상환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단기차입금의 구성을 살펴보면 하나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운영자금 대출 잔액이 3673억원으로 나타났다. 2021년 말(2755억원)과 견줘보면 1년새 33.3% 늘었다.
크레디트아그리콜 등과 유산스(Usance) 약정을 체결하면서 발생한 4039억원이 단기차입금으로 계상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유산스계약은 원료를 수입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제대금을 지불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해외 거래가 활발한 특수성이 반영된 셈이다.
매출채권 할인액 204억원 역시 단기차입금으로 잡혔다. 은행과 계약을 맺은 기업이 매출채권을 담보로 맡긴 뒤 현금을 미리 받는 데 주안점을 뒀다. 환율이 과도하게 변동하면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는 취지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