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처음으로 메자닌을 발행한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맡는 김우현 부사장은 자기주식을 활용할 수 있는 교환사채(EB)를 선택했다. 쿠폰금리(표면이자)도 제시해 투자 메리트를 극대화한 모습이다.
교환가액을 시가에 연동해 조정(리픽싱)하는 조건은 제외해 조달 불확실성은 줄였다. EB를 해외에서 발행한 만큼 국내에 투자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EB 2.2조 발행, 쿠폰금리에 쏠린 눈오는 11일 SK하이닉스는 17억달러 규모의 EB 발행을 앞두고 있다. 환율을 고려한 EB 발행 금액은 2조2377억원이다. 이사회 결의 이후 투자자 모집을 통해 4일 발행 조건을 확정했다.
EB 조건에 쿠폰금리(표면이자)가 포함된 점은 눈길을 끈다. EB의 만기는 7년이며 SK하이닉스는 투자자에게 연간 1.75% 수익률을 약속했다. 발행 이후 3개월마다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다. 이는 약 98억원으로 추정되며 연간 392억원을 이자비용으로 지출할 전망이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금리 밴드는 확정이자보다 50bp 낮은 1.25%부터 제시했다.
최근 3년 사이 해외에서 교환사채를 발행한 국내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쿠폰금리를 약속한 사례는 드물다. 포스코홀딩스(2021년), 카카오(2020년)는 각각 1조4500억원, 3396억원의 EB를 찍어 외화를 조달한 이력이 있다. 두 발행사는 투자자에게 별도의 이자를 제공하진 않았다.
물론 2~3년 전 대비 금리가 치솟은만큼 SK하이닉스는 EB에 대한 투자 유인을 높이는 차원에서 발행이자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시장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높아져 투자자들이 일정 수준의 이자를 통해 투자 수익률을 맞춰줄 것을 요청한 모습"이라고 "교환프리미엄은 해외 투자자 눈높이에 맞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통상적으로 해외에서 메자닌을 발행할 때 시가 대비 20%가량 프리미엄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투자자 모집 전일 SK하이닉스의 주가는 8만7200원이었으며 교환가액은 여기에 27.5% 할증된 11만1180원으로 결정됐다. 과거 카카오와 포스코홀딩스의 경우 교환프리미엄은 각각 35%, 45%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 EB는 발행 이후 30영업일이 경과하면 교환권 효력이 발생한다. SK하이닉스는 EB 투자자가 주식으로 교환을 요청하면 보유 중인 자기주식을 교부할 예정이다.
◇자기주식 가치 증대, 국내 투자자 '아쉬움'SK하이닉스는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 자기주식을 장내에서 직접 취득해 보유 중이다. 자기주식을 매입하는 데 총 2조5042억원을 투입했다. 그동안 자기주식 일부는 임직원과 등기이사에게 상여금 지급 목적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번에 EB 투자자가 주식 교환을 요청할 경우 처분될 물량은 전체 자기주식의 절반 수준이다. 매각 가치 2조2377억원은 취득 원금에 가까우므로 그만큼 주식가치가 커진 상황이다.
시가 하락에 따라 교환가액을 낮추는 리픽싱 조건도 없어 SK하이닉스의 부담도 덜하다. 교환가액을 시가와 연동하면 SK하이닉스가 처분해야 할 자기주식도 증가한다. 앞으로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이슈 등이 없으면 SK하이닉스가 자기주식을 추가로 동원해야 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EB의 주식 교환을 통해 부채를 줄여나가려면 CFO인 김 부사장에게는 주가 관리가 요구될 전망이다.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면서 SK하이닉스 주가는 하락세를 나타내는 중이다. EB 발행 공시 이후에도 4일 종가는 전일 대비 3% 떨어졌다.
EB 교환가액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SK하이닉스 목표 주가(11만원) 수준이다. 투자자들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은 발행 이후 4년이 경과해야 시작되는 만큼 당분간 상환 부담에서는 벗어나 있다.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주가가 하락해 있는 상황에서 교환사채 발행 조건은 평이한 수준으로 보인다"라며 "국내에 메자닌 투자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