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급해지고 유동성이 메마르는 등 자금조달에 대한 리스크가 커진 한 해였다. 올해 이러한 리스크는 덜어지지 않고 오히려 심화할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유동성 기근이 심해질수록 자금 여유가 없는 기업은 생존하기 위해 단기간 실적이 잘 나올만한 사업 위주로 집중하게 된다.
특히 바이오사업 같이 짧은 시간 내 성과 나기 어려운 사업은 이때 외면받기 쉽다. 수차례 임상을 거치면서 시간과 돈을 써야 하는데 자금조달이 어려울 수록 임상중단이나 인원감축 등 걸림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장기간 버텨야 과실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일 수록 자금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CJ제일제당으로선 오히려 기회의 시기다. 상대적으로 롱런할 자금을 투입할 여유가 되는 대기업이기도 하지만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했기 때문이다.
아직 시중 유동성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2021년 10월에 천랩을 인수한 데 이어 12월 네덜란드의 바타비아(BATAVIA BIOSCIENCES B.V.)를 인수했다. 천랩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집중하는 사업체라 한동안 비용이 들어갈 일만 많은 상황이다.
반면 바타비아는 차세대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업체라 바이어 수주를 통해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연속 인수합병으로 레드바이오 사업 내 자금줄까지 마련한 셈이다.
이달부터 바타비아는 국제백신연구소(IVI)와 공동 백신개발 협력을 시작했다. IVI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바타비아의 생산·품질 관리 역량을 활용해 다양한 감염병에 대한 백신 후보물질 임상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CJ제일제당이 2021년 말 2677억원에 지분 75.82%를 인수한 바타비아는 백신,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및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의 공정 개발과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세포·유전자 신약 개발에 나서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 중 관련 제형·제조 공정 기술과 생산 인프라까지 갖춘 곳은 드물다. 현재 바타비아는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 개발 회사에서 일감을 수주받아 원료의약품, 임상시험용 시료, 상업용 의약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바타비아가 지닌 바이러스 백신·벡터 핵심기술과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레드바이오 사업 내 성과를 당장 낼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짰다. 실제 해외를 중심으로 치료제 위탁개발생산 시장은 연평균 25~27% 고성장하고 있다. 2030년에는 세계시장 규모가 160억 달러(약 19조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레드바이오 포트폴리오는 CJ제일제당뿐 아니라 CJ그룹 전체의 중기비전과도 맥을 같이 한다. 2021년 11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4대 미래성장 엔진을 발표하며 '웰니스' 분야에서 레드바이오 사업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론 마이크로바이옴을 기반으로 레드바이오 사업에 진출하는 동시에 바이오 위탁생산개발 시장에 진입한다는 포트폴리오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개인맞춤형 토탈 건강솔루션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포함해 그룹 차원에서 올해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에 CJ제일제당은 중기비전 발표 다음 달인 2021년 12월 바타비아 인수까지 완료해 웰니스 관련 포트폴리오를 체계화하고 있다. 바타비아 케파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턴 네덜란드 현지에 제조시설을 추가로 짓고 있다. 내년 3분기 공장 가동을 목표로 대규모 생산라인을 준비하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로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바이오 사업 특성상 당장 현금을 만들 수 있는 투자처를 구하기 쉽지 않다"면서 "바타비아에선 설비 확장 등 투자를 통해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기지로 만드는 동시에 CJ바이오사이언스 신약개발 등 레드바이오 자금줄을 다각화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