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장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난제다. 수많은 기술 발전을 거쳐 먼 우주까지 여행하게 됐지만 의학 기술 개발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다. 땅에 발 딛고 사는 인간의 몸은 수없이 고장나고 무엇보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다르게 보자면 의학 관련 바이오 기술은 개척할 게 많고 성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간과 자금의 문제가 걸린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여유가 되는 대기업 등 재계가 사람의 '피'를 뜻하는 레드바이오를 눈여겨 보는 대목이다.
특히 CJ제일제당의 레드바이오 사업은 그룹의 주요 비전 중 하나로 꼽힌다. 마이크로바이옴을 기반으로 레드바이오 사업에 진출하는 비전은 2021년 11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발표한 중기 비전 4대 미래성장 엔진 중 '웰니스'에 포함된다. 이를 포함해 그룹 차원에선 올해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아직 레드바이오 사업은 갈 길이 멀다. 일찍이 진출했던 그린바이오 사업은 그나마 수익성이 좋지만 레드바이오는 신사업인 만큼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CJ바이오사이언스 매출은 1년 전보다 줄어든 반면 적자 폭은 같은 기간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구체적으로 연결 기준 매출은 2021년 3분기 누적 37억원에서 2022년 3분기 누적 26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76억원에서 207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주요 항목을 보면 경상연구개발비가 해당 기간 36억원에서 118억원으로 세 배 넘게 늘었다. 여기에 급여가 20억원에서 45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판매관리비 항목들이 대부분 두 배 가량 늘어난 영향도 있었다.
이렇게 연구개발과 판매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배경엔 레드바이오사업 자체의 특수성이 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2021년 10월 인수한 바이오기업 천랩과 기존 레드바이오팀을 합쳐 작년 1월에 출범시킨 법인이다. CJ제일제당은 천랩 지분 43.99%를 약 982억원에 사들여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여기서 천랩은 장내 세균·바이러스 등 사람 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과 유전자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연구하는 회사다. 일반적으로 몸무게 70㎏ 성인 한 명이 약 38조 개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가운데 건강에 도움이 되는 종류를 선별해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건강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소화를 원활하게 하고 콜레스테롤·혈당 수치 조절과 뇌신경 전달물질 생성을 돕게 된다.
문제는 쉽사리 실적을 내기 어려운 시장이라는 점이다. 신약개발은 1~2년만에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손익분기점(BEP)을 구체적으로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개발 과정에서 일반적인 제품 생산과 달리 임상절차를 다수 거쳐야 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천랩이 인수 전에는 연구 중심의 회사였으나 CJ바이오사이언스로 출범한 이후엔 신약개발이라는 명확한 사업적 목표를 바탕으로 임상을 거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 한다"면서 "다만 그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임상을 빨리 승인받는 게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데 관건이다. 올해 CJ바이오사이언스는 연내 기존 천랩이 갖고 있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임상 승인받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천랩은 국내 최대 규모로 보유 중인 실물균주(약 5600개)를 기반으로 면역항암·장질환·신경질환 등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이달 20일 미국 FDA 임상 승인받은 면역항암 파이프라인을 연내 국내에서도 식약처 임상을 진행하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론 2025년까지 파이프라인 10건, 기술수출 2건을 보유해 '글로벌 1위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남은 3년간 계속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를 위해 대주주 CJ제일제당 재무전략실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재무전략실장인 강경석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21년 자리에 오른 뒤 천랩 M&A 추진건을 직접 맡은 만큼 앞으로도 관련 자금 조달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부채비율 관리 등도 강 CFO의 과제다. 2020년 93.8%였던 CJ제일제당 부채비율은 강 CFO가 부임한 2021년 106.7%, 2022년 3분기 기준 114.9% 등으로 오르면서 관리 필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레드바이오 사업 특성상 단기적인 성과 창출은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길게 끌고가기 위해선 결국 자금력과 조달전략이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