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기업에서 인수합병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임원은 최고재무책임자(CFO)다. 피인수 기업에 대한 가격 측정부터 인수대금 마련, 인수 후 통합(PMI)까지 전 과정이 재무·회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50년이 훌쩍 넘는 포스코홀딩스(옛 포스코) 역사에서 가장 큰 인수합병 투자건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이다. 인수가로 약 3조3700억원을 써낸 포스코홀딩스는 롯데그룹을 제치고 국내 1위 종합상사 기업을 품었다.
인수 전 과정에 참여한 이는 2006~2009년까지 포스코홀딩스에서 CFO를 지낸 이동희 전 부회장이다. 이 전 부회장은 인수 직후 PMI추진반장을 맡은 데 이어 대우인터내셔널 초대 대표이사(CEO)에 선임돼 2013년까지 재직하며 포스코홀딩스로의 안정적인 편입에 기여했다.
이 전 부회장과 포스코홀딩스가 세운 PMI 원칙 중 하나는 대우인터내셔널의 영업력을 헤치지 않는 것이었다. 상사라는 사업의 경쟁력이 영업력, 즉 사람에게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영업 관련 조직과 인력들을 적극 우대했다. 국내 1위 종합상사 기업을 만들었다는 자부심 강한 대우인터내셔널 인력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이 전 부회장 이후 CEO 인선으로 확인된다. 재직 당시 직급 기준으로 전병일 사장(2014년)과 김영상 사장(2015~2019년), 주시보 사장(2020~2022년), 그리고 지난해 말 선임된 정탁 부회장까지 모두 '대우 출신'이다.
첫 번째 대우 출신 CEO였던 전병일 사장이 '미얀마 가스전 매각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어 결국 전 사장이 자진 사퇴하고 매각을 추진했던 포스코홀딩스 가치경영실의 조청명 부사장(실장)이 회장 보좌역으로 이동하는 등 내홍이 불거진 이후에도 변함없이 대우 출신들을 CEO에 앉혔다.
다만 '포스코 출신'을 고집한 자리가 있는데 바로 CFO 역할을 하는 자리다. 2018년 약 1년간 짧게 경영기획본부장을 지낸 민창기 부사장을 제외하면 인수 무렵인 2010년부터 현재까지 대우 출신이 CFO 역할을 하는 자리에 앉은 적은 없다.
재직 당시 마지막 직급 기준으로 이창순 전무(2010~2013년, 2015년)와 최정우 부사장(2014년), 전국환 부사장(2016~2017년), 노민용 부사장(2018년~현재) 모두 포스코홀딩스에 입사해 재무 부문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은 이들이다.
주목되는 점은 CFO들이 사내이사에 선임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대우 출신 CEO가 등용되기 시작한 2014년부터 CFO들이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포스코홀딩스 출신인 이동희 부회장이 CEO였을 때인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CFO였던 이창순 전무는 사내이사가 아니었다.
CFO 자리에만은 포스코 출신을 고집하고 이들을 계속해서 사내이사에 선임한 건, 적어도 초창기에는 CEO를 견제하고 모회사인 포스코홀딩스와 재무·회계를 비롯한 전반적인 시스템 및 문화 통합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CFO 위상이 높은 포스코홀딩스의 체계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는 포스코홀딩스는 대표이사 한 자리에 대부분 CFO 역할을 하는 임원을 앉혔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초대 CEO인 이동희 부회장도 포스코홀딩스 CFO 시절 중 마지막 1년은 당시 정준양 회장과 공동 대표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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