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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더벨이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한화그룹이 CFO 인사에서 주로 쓰는 용인술은 계열사간 보직 순환이다. 최근 경영전략 부분에선 외부인재를 적극 기용하는 새바람이 눈에 띄지만 재무인력의 경우 여전히 내부이동을 통해 분위기 쇄신이 이뤄진다.
이는 계열사별 주요 이슈에 대응한 '믿을맨'의 순환 배치라는 평가다. 그룹차원에서 재무전략 공유와 노하우 확산의 효과도 있다. CFO에서 CEO로 승격하는 케이스 역시 심심치 않게 보인다.
특히 핵심계열사 한화솔루션과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재무담당 임원의 연쇄 이동이 연거푸 일어난 곳이다. 3세 김동관 사장이 이끄는 한화솔루션의 탄생을 전후해 자리 교체가 집중됐다.
애초 한화솔루션이 출범하기까지 계열사 합병과 자금운용을 총괄했던 이는 지금 한화시스템 CFO인 윤안식 부사장이다. 한화종합화학(2010년 한화케미칼로 사명 변경) 자금운영 금융팀 임원,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재무실장을 거친 그는 2017년 말부터 한화케미칼(현 한화솔루션) CFO로 일하면서 자회사, 손자회사들을 합치고 다듬는 작업을 맡았다.
윤 부사장의 주도 아래 한화큐셀의 손자회사 한화큐셀과 자회사 한화솔라홀딩스가 합병했고 한화첨단소재가 한화큐셀코리아를 흡수해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가 탄생했으며, 이 회사를 다시 한화케미칼이 품어 2020년 1월 지금의 한화솔루션이 만들어졌다.
밑작업이 2년 가까이 걸린 한화솔루션 출범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윤 부사장은 바쁘게 움직였다. 통합법인으로 재탄생한 한화시스템 CFO로 이동해 도심항공 모빌리티사업과 우주산업군 투자를 뒷받침했다. 2021년에는 1조2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유상증자를 성사하기도 했다. 그룹의 베테랑 재무통인 만큼 굵직한 과제가 있는 곳들로 잇달아 전진 배치된 셈이다.
윤 부사장이 2020년 초 한화시스템으로 이동했을 당시 그가 한화솔루션에서 가지고 있던 재경부문장 직함은 전연보 전무가 이어받았다. ㈜한화 재무관리실장을 거쳐 한화솔루션 회계담당 임원으로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CFO 타이틀은 전략부문 재무실장으로 신규 부임한 신용인 부사장에게 주어졌다.
전 전무는 그 휘하에서 케미칼부문 재경부문장, 전략부문 회계담당임원 등의 직책을 맡다가 이듬해 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재무실장으로 옮기면서 CFO에 올랐다.
이에 맞물려 한화에어로의 전임 CFO였던 박경원 부사장 역시 거취가 바뀌었다. 박 부사장은 한화건설로 이동해 기존의 한화건설 CFO 김영한 부사장의 자리를 대신했다. 한화건설 역시 CFO 교체가 비교적 단기간에 일어났는데 2017년 선임된 유영인 전 부사장이 2020년 초 김영한 전 부사장으로 교체됐다. 박경원 사장이 그 이듬해 왔으니 김 전 부사장의 근무기간은 2년에 못미친다.
공교롭게도 한화에어로에서도 박 부사장의 전임 CFO가 김영한 부사장이었다. 둘 모두 한화에어로를 지나 한화건설로 이동하는 루트를 밟은 셈이다.
이밖에 한화의 금융계열사를 보면 CFO가 CEO로 승진한 사례가 유독 잦은 편이다. 한화생명 경영지원실장(CFO)을 지낸 홍정표 대표는 현재 한화저축은행 CEO로 있다.
한화손해보험의 강성수 사장 역시 그룹에서 손꼽히는 재무 전문가다. 한화증권(현 한화투자증권) 자금과를 시작으로 한화건설 금융팀장을 거친 그는 2016년 5월부터 약 2년간 한화손보 재무담당 임원으로 일했다. 이후 그룹 재무담당 부사장 등을 지낸 뒤 2020년 한화손보 대표로 부름받았다. 올해 3월에는 만장일치로 재신임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화생명보험 여승주 사장도 재무담당 임원 출신이다.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보험) 재정팀장과 전략기획실장으로 상장 실무를 총괄했으며 그룹 전략기획팀장으로 삼성 화학계열사 인수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한화투자증권 CEO에 임명됐다가 2019년 한화생명으로 복귀해 CEO에 올랐다. 각자대표체제였으나 차남규 부회장이 퇴임하면서 단독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