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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더벨이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SK그룹의 최고재무관리자(CFO)들은 전부 그룹 '순혈'들은 아니다. 회사 내 재무 라인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다가 CFO로 승진한 사례도 있고, 경력 중 오랜 기간을 SK그룹 외부에서 보내다가 CFO로 영입된 케이스도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룹 내 CFO나 재무 요직의 인사 법칙이 딱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띄는 원칙이 있다. 힌트는 지주사인 SK㈜내 '재무1실'에 있다. SK㈜의 재무1실 출신들은 현재도 그룹 내 재무를 포함해 요직을 맡고 있다.
SK㈜의 재무실 개념이 생긴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SK네트웍스 워크아웃 졸업, SK C&C 기업공개(IPO)를 주도하면서 재무개선 작업의 총괄자 역할을 했던 장진원 SK그룹 전 CFO 산하에 재무1실과 재무2실이 탄생했다. 이전까지는 '재무1·2실'이 아닌 '재무실' 체제였다.
재무1실과 재무2실은 역할이 다르다. 재무2실은 지주사의 세무 업무를 전문으로 담당한다면 재무1실은 지주사와 그룹 전반의 재무 상황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계열사 감사를 비롯해 그룹 전반의 재무 상황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사내 위상 측면에서도 무게감이 적지 않은 곳이다.
재무1실은 특히 '투자 전문회사'를 표방하는 SK㈜에서 재원 조달 역할을 담당한다. 회사채 발행 등 자본시장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곳이 바로 SK㈜ 재무1실이다. 재무1실장은 조달 업무를 이끌면서 지주사 재무 상황을 챙기는 폭넓은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초대 재무1실장은 현 SK에너지 대표이사인 조경목 당시 재무1실장이었다. 조경목 사장은 2011년 이전에도 장진원 전 CFO 산하에 재무실장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이후 장진원 전 CFO의 자리를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이어받으면서 조 의장과의 호흡도 맞췄다.
재무 1·2실 체제는 2011년 가동됐다가 2012~2013년에는 다시 '재무팀'으로 통합돼 운영됐다. 그러다 2014년부터 다시 '재무1·2실 체제'가 부활했다.
그동안 재무1실장에서 재무팀 팀원 등 여러 직책명을 거쳤던 조경목 사장은 조대식 당시 재무팀장이 SK㈜ 2013년 초 대표이사로 승진하면서 재무팀장(재무부문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조경목 사장의 몫이었던 재무1실장 자리는 현 SK㈜ CFO인 이성형 부사장이 이어받았다. 이성형 부사장은 2015년까지 재무1실장으로 근무하다 2016년 SK텔레콤 재무관리실장으로 이동했다.
이성형 부사장에 이어 2016년부터 재무1실장 자리를 이어받은 인물은 현 SK텔레콤 최고재무관리자(CFO)인 김진원 부사장이다. 김진원 부사장은 짧은 시간 재무1실장 역할을 맡다가 SK USA 대표로 이동했다. 이후 2018년에는 현 소속인 SK텔레콤으로 이동해 재무그룹장을 역임했다.
김진원 부사장 다음으로 재무1실장을 맡은 인물은 김형근 현 SK㈜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부문장이다. 김형근 당시 재무1실장은 지주사 재무1실장을 비롯해 SK실트론·SK임업·SK바이오팜·SK바이오텍·SK해운의 감사 역을 겸임했다. 이후 2020년 중순에는 SK에어가스(現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의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SK네트웍스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됐다.
김형근 재무1실장이 SK에어가스 대표이사로 이동하고 바톤을 이어받은 인물은 현 재무1실장인 채준식 재무1실장이다. 채준식 재무1실장은 현 재무부문장(CFO)인 이성형 부사장 산하에서 재무1실장 역할과 함께 SK E&S·SK머티리얼즈·SK실트론·SK바이오텍·SK임업·휘찬의 감사역과 SK리츠운용의 기타비상무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채 실장은 1973년생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