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전 1978년,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고등교육재단 장학금 수여식에서 "21세기 SK는 세계 100대 기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마 당시 이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만의 희망사항 혹은 의례적인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약 반세기가 흐른 현재, 시가총액 기준 SK하이닉스는 세계 170위권까지 올라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어느 순간부터 '거버넌스 스토리(Governance Story)'를 발표하며 세계 100대 기업에 걸맞는 건전한 거버넌스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바로 '이사회 중심 경영'이 있다. THE CFO는 SK그룹과 함께 이사회 중심 경영에 대해 대화했다. 그들이 정의하는 이사회 중심 경영, 이사회 경영의 정당성과 필요성,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을 취재했다.
◇밸류업 노력에도 불거진 거버넌스 이슈 올해 국내 재계를 관통하는 단어는 '밸류업'이었다. 이 밸류업, 복합적인 요인 탓에 국내 기업이 저평가되는 '코리안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고자 등장한 개념이다. 일부 기업집단들은 자기주식 매입 및 소각 등 주가 부양책을 펼쳤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올해 재계와 자본시장에는 밸류업 행보를 민망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다.
자회사 분할과 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에 분노한 외국인 기관투자자는 공개 석상에서 불만을 토로했고, 이에 금융당국이 사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칼집을 보이기도 했다. 기업집단 내 상장사 합병이 이뤄질 때마다 합병비율 논란이 벌어지는 모습은 올해도 재현됐다. 경영권 분쟁이 터진 기업은 '주주 환원'이라는 명목으로 자기주식을 사들이더니 얼마 뒤 갑자기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기도 했다.
코리안 디스카운트 현상을 형성하는 이런 사건들의 뿌리 끝에는 '지배구조'가 있다. 1인, 소수, 혹은 한 집안이 기업을 집권하는 시스템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이 재벌 문화는 '나', '우리 집안', '내 자식'을 우선시하는 의식에 때로는 주주일반을 과감히 외면하거나 배제하는 선택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현상이 지속 발생하면서 시장은 한국 '재벌'을 자본집약적 사업 환경에서 독과점을 야기하고, 지배력을 통해 본인들의 이익 증진을 취하는 집단으로 인식해왔다. 이미지화가 된 셈이다. 이런 시스템이 낯설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 눈에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라는 단어는 재벌 중심의 빠른 성장을 경험한 한국 기업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반대급부같은 개념이었을 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재벌 다음 세대의 한국 기업 경영 체제를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부의 세습은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한국은 상속세율이 높다. 세금의 관문을 거치면 세습되는 부의 양은 적어진다. 10년 전, 15년 전과 환경도 다르다. 일감을 몰아줘서 성장시킨 자녀의 회사에 지분을 증여해 상속세 대신 세율이 낮은 법인세를 내는 묘수, 혹은 꼼수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또 근본적으로 후세대로 갈수록 선대의 경영 의지가 옅어질수도 있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져 재벌 '1인'의 정당성이 적어질 여지도 많다. 올해 LG의 분쟁 케이스, 경영권 유지를 위해 OCI에 손을 내밀었던 한미그룹, 후세대로 와 균열이 시작된 고려아연-영풍 사례를 두고 일각에서는 '재벌의 균열'을 논한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지배구조 문제와 재벌 경영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답안지로는 시장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거론된다. 자본주의 체제 기업이라면 당연히 갖춰져야 할 시스템이지만 앞서 언급한 국내 특유의 경영 문화 탓에 아직까지 '지향점'으로 밖에 삼지 못하고 있는 그 체계다.
◇자타공인 선진 거버넌스 SK, 이사회 중심 경영 스스로 강조 이런 이사회 중심 경영을 국내 재계에서, 그것도 오너 기업집단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곳이 SK그룹이다. 최태원 회장은 재벌의 일원이자 국내 오너 중심 기업 문화의 수혜자면서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한다.
SK를 향한 외부 평가기관의 시선도 우수한 편이다. 한국ESG기준원이 부여한 SK그룹 계열사들의 ESG등급은 대부분 A등급이다. CFO 설문 등 지배구조 관련 설문에서도 국내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집단에 SK의 이름이 단골 손님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SK가 주장하는 '이사회 중심 경영'과 최 회장이 강조하는 '거버넌스 스토리'는 단어만 들으면 그 개념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사회 중심 경영의 개념은 무엇인지, 이사회 중심 경영이 왜 답이 될 수 있는지, SK는 그래서 이사회 중심 경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THE CFO가 취재했다.
THE CFO는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채희석 SK SUPEX추구협의회 Governance 지원담당 겸 Global Compliance 담당과 SK의 이사회 중심 경영에 대한 질답을 주고 받았다. SUPEX추구협의회는 SK그룹 경영 최고 협의기구다. 채 담당은 SUPEX추구협의회 내 Governance위원회에 소속돼 SK그룹의 거버넌스 선진화와 지배구조 이슈를 총괄하고 있는 담당 임원이다. Governance위원회의 위원장은 SK텔레콤 대외협력담당인 정재헌 위원장이다.
채 담당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채 담당은 42회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2003년 사법연수원(32기)을 수료했다. 또 채 담당은 국내 첫 러시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06년부터 2019년까지 법무법인 지평에서 사모펀드와 M&A 담당 변호사를 맡았던 채 담당은 2020년 SK그룹에 전격 영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