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위니아그룹은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한앤코)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남양유업 백기사를 자처, 인수를 기다리다 쓸쓸히 퇴장했다. 인수 계약을 맺은 직후 유업종 및 식음료업 전반에 걸쳐 NY홀딩스, NY유업 등 알파벳 ‘NY’를 내세운 상표권을 다수 출원한 것만 봐도 대유위니아그룹이 식품업계 진출이란 꿈에 가득 부풀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은 상처뿐인 인수전, 경영진의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협약 당시 홍 전 회장에 지급한 계약금 320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홍 전 회장과 2년 넘게 소송을 벌여야 했다. 남양유업은 3년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최종 승리한 한앤코의 지휘 아래 경영정상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의 몽니에 남양유업과 한앤코, 백기사 대유위니아그룹까지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었던 경영권 분쟁 사례로 남았다.
◇'불가리스 사태' 후 경영권 매각, 남양유업 3년간 분쟁의 시작 1964년 설립된 남양유업은 협동조합인 서울우유를 제외하고 민간 우유업체 가운데 시장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는 사실상 '1등 기업'이었다. 급격한 성장을 하진 않았지만 내실있는 성장을 해왔다. △맛있는 우유 △불가리스 △초코에몽 △임페리얼 XO(분유) △몸이가벼워지는시간17차 등을 제조·판매해 2010년 이후엔 10년 넘게 매해 1조원 이상의 매출을 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건 코로나19 펜더믹 당시 불거진 ‘불가리스 사태’ 때였다. 남양유업은 당시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능이 있다는 무리한 홍보를 했고 이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거센 역풍으로 홍 회장은 2021년 5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더불어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남양유업을 한앤코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년 간의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열렸다. 홍 전 회장은 돌연 9월 매각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한앤코는 반발하며 주식양도 이행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홍 전 회장은 한앤코가 SPA 체결 계약서에서 자신이 내세운 전제조건이 담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미당 분사와 가족 예우에 관한 조건이었다. 홍 전 회장은 당시 소송 대리를 맡았던 김앤장 소속 변호사로부터 추후 계약 조건을 바꿀 수 있다고 듣고 도장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한앤코 측은 주식매매계약 후에 다시 조건을 바꾼다는 건 10년가량의 33번의 인수합병을 진행하며 해본 적도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홍 전 회장은 남양유업을 다른 원매자에게 매각키로 했다. 이 판에 등장한 게 대유위니아그룹이었다. 그 해 11월 대유홀딩스는 남양유업의 백기사를 자처하며 홍 회장 측 지분 53.08%와 경영권을 320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단 전제조건은 홍 전 회장과 한앤컴퍼니와의 소송에서 홍 전 회장이 승소할 경우에 한해서였다.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두 회사는 협력 관계를 유지키로 했다.
◇가전업체가 식음료업체를? 사업다각화 꿈꾼 대유위니아그룹 업계는 가전업체 대유위니아그룹이 남양유업을 인수한다는 데서 궁금증을 품었다. 가전과 식음료 사이 사업 연관성이 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유위니아는 팬데믹 시대에 사업 다각화 방안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대유위니아는 가전과 식품이 소비자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품목이란 점에 주목했다. 유제품 주요 소비층이 바로 자녀를 둔 여성 소비자이고 이들이 곧 가전 구매 고객인 만큼 위니아딤채·전자의 마케팅 영업 노하우를 식품 쪽에도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글로벌 진출 쪽에서도 시너지가 날 것으로 예상했다. 남양유업은 세계 35개국에 유아식, 유제품, 커피믹스, 음료 등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종합식품회사다. 위니아전자, 대유에이피도 해외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남양유업 인수 이후 대유위니아그룹의 해외시장 확장이 더욱 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대유위니아그룹은 M&A로 사업 영역을 넓힌 회사였다. 남양유업 인수를 통해서 또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대유위니아그룹은 박영우 창업주가 1999년 광주광역시에 대유에이텍을 설립한 뒤 20여년 간 가전, 레저 등 다양한 업종의 인수합병으로 사업을 전환해온 기업이다.
2001년 삼원기업(현 대유에이피)을 인수, 2006년엔 성용하이메탈을 인수해 알루미늄 휠 사업으로 확장했다. 2011년에는 골프장 몽베르컨트리클럽을 인수하며 레저 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엔 위니아만도(현 위니아딤채) 지분 70%, 2018년 동부대우전자(현 위니아전자)를 각각 인수하면서 가전업계로 진출했다. 이런 히스토리를 기반으로 박영우 회장은 식품업계에도 발을 떼려 했다.
◇계약금 반환 싸움만 2년, 결국엔 승소...상흔만 남은 M&A 시도 대유홀딩스는 남양유업과 한앤코와의 소송전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보란듯이 남양유업에 재무·회계 전문가 20여 명을 구성해 남양유업에 파견하는 등 남양유업의 경영정상화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때만 해도 반전이 일어나는 듯 했으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앤코가 홍 전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에서 모두 승소하는 한편, 남양유업-대유홀딩스가 맺은 협약의 이행을 금지하는 가처분 소송에서도 승소하면서 연합을 형성했던 대유홀딩스도 홍 전 회장과 결별할 수 밖에 없었다.
대유위니아그룹은 남양유업 M&A 실패와 맞물려 시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위니아전자의 주력 생산시설인 중국 톈진 공장이 셧다운되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한 때였다. 견실한 중견그룹이었던 대유위니아그룹은 2023년 9월부터 위니아전자를 시작으로 대유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들이 연쇄부도를 냈다.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도 기업회생절차를 밟았다. 체불 임금 문제도 장기화되면서 그룹의 평판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더해 남양유업 인수전 또한 대유위니아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실책으로 남았다. 과연 자금은 있었는지부터 시작해, 그룹 내 유동성이 넉넉한 시기도 아니었는데 무리한 욕심을 냈다는 얘기가 들끓었다. 무엇보다 홍 전 회장에게 계약 당시 지급한 계약금 320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전까지 가게 되면서 비난은 더욱 커졌다.
계약금 법적 분쟁은 2년 넘게 이어졌고 대유홀딩스는 지난해 말 결국 홍 전 회장이 계약금 320억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3심의 판결을 거머쥐었다. 사업다각화의 꿈을 안고 남양유업 인수를 추진했던 대유홀딩스는 이렇게 상흔만을 남긴 채 모든 작업을 일단락했다.
남양유업은 주인이 바뀌었다. 한앤코가 제기한 소송에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홍 전 회장 일가가 한앤코에 주식을 넘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홍 전 회장이 이에 불복했으나 올해 1월 4일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남양유업의 60년 오너 경영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하지만 지금도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홍 전 회장은 한상원 한앤코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홍 전 회장과 한앤코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 1월 한앤코의 승소로 일단락됐으나 개인 간 소송전은 이어지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