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사는 공개하는 재무정보가 제한적임에도 필요로 하는 곳은 있다. 고객사나 협력사,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이 거래를 위한 참고지표로 삼는다. 숨은 원석을 찾아 투자하려는 기관투자가에겐 필수적이다. THE CFO가 주요 비상장사의 재무현황을 조명한다.
SK해운은 6년 전 인도받았던 대형선 2척이 오랜 골칫덩이로 있었다. 시험 운항부터 말썽이 생기면서 재무적으로 적잖은 부담을 안겼기 때문이다. 한 번도 상업운전을 하지 못하고 유지비만 잡아먹다가 결국 폐선 절차에 들어갔는데 그간의 손해만 수천억원이다.
다만 관련 소송 1심에서 SK해운이 지난해 승소, 올해 추가적 배상금이 들어왔다. 아직 2심이 진행 중이긴 해도 일단은 한숨 돌리게 됐다.
앞서 SK해운은 2018년 2월 삼성중공업으로부터 17만4000CBM급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인 'SK세레니티'와 'SK스피카'를 인도받았다. 두 선박은 국산 LNG화물창인 KC-1을 처음 적용해 건조한 LNG운반선이다.
KC-1은 한국가스공사가 설계하고 삼성중공업이 선박을 제작했다. SK해운은 가스공사와 운송계약을 통해 선박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가스공사로부터 미국 멕시코만 연안에 있는 루이지애나주 사빈패스(Sabine Pass) LNG 프로젝트의 화물을 위탁받았다. 기술적으로 의미가 상당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애초 화물창 기술은 프랑스 GTT(Gaztransport&Technigaz)가 독점해 왔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LNG선을 지을 때마다 막대한 로열티를 줘야 하는 배경이다. 한 척당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는 선가의 5%수준, 약 1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유지보수 비용까지 더하면 조선3사는 연간 수천억원을 GTT에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KC-1은 기술 독립을 위해 한국가스공사 주도로 개발된 한국형 LNG 화물창이다.
하지만 이 화물창을 장착한 SK세레니티와 SK스피카는 시험 운항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도중에 중단했다. 허용된 최저 온도보다 화물창 외벽 온도가 낮아지는 결빙 현상(Cold Spot)이 계속해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뒤 네 차례의 수리를 거쳤지만 상업 운전에 실패하면서 수리비와 미운항 손실만 빠져나갔다.
이에 따라 SK해운은 삼성중공업에 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 2018년 5월 영국 런던 중재재판부에 중재를 요청했다. 또 이와 별도로 국내에서도 SK해운과 삼성중공업, 한국가스공사 등 3사간의 법정다툼이 벌어졌다. 공방의 결과는 SK해운에 유리하게 나왔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가스공사의 설계하자 책임을 물어 미운항 손실 1154억원을 SK해운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영국 중재법원 역시 삼성중공업이 선박가치 하락분인 2억9000만 달러를 SK해운에 배상해야 한다고 봤다.
덕분에 SK해운은 지난해 10월 가스공사로부터 국내 판결로 인한 배상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지연이자를 합쳐 1479억원이다. 또 영국 중재법원이 판결한 배상금과 지연이자 4218억원을 올 상반기에 추가로 삼성중공업에서 수취했다.
SK해운은 지난해 가스공사가 지급한 1479억원을 재무상태표상 기타유동부채(선수금)으로 인식해둔 상태다. 회사 측은 “아직 국내에서 2심이 진행 중이지만 1심 판결 내용상 경제적 효익의 유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우발자산으로 공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배상금이 현금으로 들어오면서 SK해운은 재무부담을 일부 완화할 수 있었다. 지난해 4분기에 손해배상금을 재원으로 주주대여금 1250억원을 갚았고, 올 상반기에도 KC-1에 대한 선박금융 4091억원을 상환했다.
이 밖에 최대주주 한핸코탱커홀딩스를 상대로 발행한 전환주식은 전환가격이 KC-1 관련 소송결과에 따라 변동되는 조건이다. 작년 말 기준 608억원이며, 가격이 변동하기 때문에 자본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채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추후 KC-1 소송 결과를 반영해 전환가격이 결정되면 다시 자본으로 인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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